< 작품 정보, 줄거리 >
- 제목 : 일인칭 단수
- 작가 : 무라카미 하루키
- 옮긴이 : 홍은주
- 출판사 : 문학동네
- 줄거리(인터넷 교보문고 참고)
가장 개인적인, 가장 보편적인 기억과 기록의 주인공
‘나’라는 소우주를 탐색하는 여덟 갈래의 이야기
《노르웨이의 숲》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의 작품으로 세대와 국경을 넘어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 작가 특유의 미스터리한 세계관과 감성적인 필치, 일인칭 주인공 ‘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단편들을 모았다. 누군가의 삶을 스쳐가는 짧고 긴 만남을 그려낸 여덟 작품 속에서 유일무이의 하루키 월드를 구성하는 다채로운 요소들을 한데 만나볼 수 있다.
- 작가 소개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1987년 발표현 [노르웨이 숲](한국어 번역판 제목 : 상실의 시대)으로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이름을 드높였다. 한국에서도 [상실의 시대]로 출판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당대 청년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아시아권에서 이름을 떨치던 그는 2005년 [해변의 카프카]를 발표하며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등 전세계적으로 유명 작가로 발돋움한다.(2015년에도 타임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 아이콘부문에 선정되었다.) 이후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의 장편소설은 연이어 한일 양국에서 히트를 치며 여전한 흥행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장편소설 작가로 알려져있지만, 그는 많은 수필, 단편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작품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커피점 및 재즈바를 운영하기도 했다.(실제로 작가는 재즈광이며 이 점은 이번에 소개할 작품 외에도 간간히 주인공들의 취향에 반영되기도 한다.)
< 짧은 감상평, 리뷰 >
※ 문학동네에서 출판된 [일인칭 단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8편의 단편모음집입니다. 리뷰 중에는 단편들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도 포함되기 때문에 책을 온전히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하루키 이야기에 대한 나의 편견은 다음과 같다.
1. 하루키의 소설은 남여의 육체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등장한다.
: 결혼을 얼마 앞둔 때 우스개소리로 친구들에게 '난 예식장에 긴 머리로 들어가고 싶어서 머리 기르는 중이야. 그래서 요즘은 하루키만 읽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야한 책을 읽거나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가 빨리 자란다는 속설이 있다.)
2. 하루키의 소설은 믿거나 말거나이다.
: 현실인지 가상인지, 정말 일어난 일이긴한건지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힐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믿거나 말거나. 그것은 소설 속 주인공에게 던져진 숙제이자(뭐 믿든 안믿든 주인공들은 초현실적인 세상에 발을 담그게 되지만), 독자들의 선택이다.
3. 하루키의 소설은 허무맹랑하지만 술술 읽힌다.
: 하루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이고, 말이 되는 이야기들은 널리고 널렸다. 세상에는 말이 되는 이야기지만 흡입력이 떨어지고 책의 다음 장을 넘기고 싶지 않고, 의무감에 마지막장까지 보게 되는 책도 정말 많다. 하루키의 소설은 허무맹랑하고 때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가장 최근 발표한 장편소설 [기사단장 이야기]에서 '이데아'라는 개념까지 살아움직이며 독자들을 당황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장을 언제 넘겼나 싶게 마지막장을 덮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4. 하루키의 소설은 결국 독자들을 현실로 뚝! 떨어뜨린다.
: 하루키의 소설을 다 읽고나면 행복한가? 글쎄. 나는 행복해진다기보단 꿈에서 깬 뒤 현실을 자각하는 시간에 접어드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 우연히 뭔가에 휩쓸려 정신적, 육체적 여정을 거쳤다가 '아!'하면서 다시 현실로 뚝 떨어지는 듯한 기분. [일인칭 단수]의 주인공이 거울 속 자기 자신을 보고 생경함을 느끼듯 독자들은 책을 다 덮고 나면 뭔가 모르게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현실에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하루키의 이렇게 하루키의 마법에 빠져 그의 다음 소설도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키에 대한 나만의 편견을 굳이 구구절절 밝힌 이유는 이 단편소설 모음집은 나에게 한마디로 하루키에 대한 모든 편견이 집약된 '하루키 지침서'같았기 때문이다.
[돌베게에], [위드 더 비틀스]에서는 [노르웨이 숲]에서 그러했듯 주인공 소년과 인연을 맺는 이해하기 힘든, 죽음의 이미지를 지닌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며 소년의 삶의 한 부분에 흔적을 남기지만(당연히 소년을 육체적으로도 성장시킨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죽음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간다.(혹은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크림],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에서는 주인공이 현실과 환상의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 서게 된다. '중심이 여러개 있으면서 둘레를 갖지 않는 원'타령을 하는 노인, 가상의 상황을 기사화 해낸 뒤 수년이 흘러 환상처럼 꿈 속에 등장한 찰리 파커, 여행지에서 인간 여자들을 연모해 이름을 훔친다고 고백하는 인간의 말을 하는 원숭이를 만난 이야기.
이야기 속 주인공들도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부정도 해보고(내가 꿈을 꾼 것일까.), 혼자만 알고 있기도 하지만(내가 인간의 말을 하는 원숭이를 만났다고 하면 정신병원에 쳐넣지 않을까.) 결과적으로는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혹은 '믿는게 좋다. 어쨌거나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까.'로 결론을 맺는다. 마치 그간 발표한 모든 소설에 대한 하루키의 대답이 실린듯한 이 소설들의 구절구절을 읽으면서는 왠지 모르게 안도감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앞 7편의 소설들이 어딘가 하루키의 자전적 이야기 같았다면(그 중에서도 원숭이 이야기는 정말 하루키가 겪었을 것만 같다ㅎㅎ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소설들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이 책의 제목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단편 [일인칭 단수]는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 같아서 좀 더 여운이 남았다.
책의 주인공은 양복을 즐겨 입지 않는 사람인데, 가끔은 옷장을 열고 양복을 꺼내입고 외출을 하며 색다른 기분을 느껴보기도 한다. 이날도 주인공은 우연히 옷장을 열고 양복을 꺼내입고 거울을 보는데 뭔가 자신에게 생경한 기분을 느낀다. 그래도 양복을 입은 김에 외출을 감행한다.
봄의 아름다움이 묻어있는 세상에서 남자는 한 재즈바에 들어가서 보드카를 주문하고 조명 아래서 읽던 책을 계속 읽는다. 그리고 한 여자를 만난다. 자신은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독설을 쏟아부으며 '3년전 어느 물가에서 그가 한 지독한 짓에 대해 부끄러워해야한다'고 쏘아댄다.
남자는 재빨리 계산을 하고 지하 바에서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을 오르며 남자는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내 안의 뭔가가 그녀의 구체적이지만 상징적인 말에 의해 끌려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계단을 올라 왔을 때 남자는 눈 앞에 펼쳐진 세계가 자신이 알던 세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대게 사람들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생각 안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일을 계기로 그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하면 아주 익숙했던 것마져 생소해지고, 내가 알던 내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모르는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주인공이 바에서 겪은 일은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과 흡사하다. 그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나의 과거를 의심하고(나도 뭔가 이런 초현실적인 경험을 했던거 같단말이지.... 아....기억날듯 말듯하네) 내가 알던 현실이 미묘하게 바뀐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의 독자들은 이렇게 교훈이나 지식이 아닌,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을 그의 이야기를 통해 경험한다.
책 속 등장하는 인물들만큼이나 독자들도 어리둥절한 상황 속에서 뭔가 우리 주위를 감싸고있지만 자각하지 못했던 착잡한, 미묘한 슬픔과 고독 등의 감정들을 한번에 들이마시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으로서의 독서는 흔하지 않고, 그래서 나는 하루키를 읽는다. 그래서 아마 국적, 나이를 불문하고 다들 하루키의 마법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뭘 느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건 어떨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 책 속의 좋은 구절들 >
그때 그녀가 어떤 이름을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흔한 이름이었다는 기억만 있다.
저렇게 평범한 이름도 이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도.
때로는 이름 몇 글자가 사람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어버리기도 한다.
-16p [돌베게에] 中
나는 말한다. "그래도 원리나 의도 같은 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 말에 그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 굳이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요?"
(중략)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48p [크림] 中
나 하나만을 위해 연주해주었던 근사한 음악을 조금이나마 재현하려고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단 한 소절도 떠올리지 못했다.
(중략)
그렇다, 버드는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내 꿈에 찾아온 것이다. 한참 옛날에, 내가 그에게 보사노바 음악을 연주할 기회를 제공한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 갖고 있던 악기로 <코르코바도>를 연주해주었다.
당신은 이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믿는 게 좋다. 어쨌거나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까.
- 71p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中
우리는 우연의 이끌림에 따라 두 번 마주했다.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사이에 두고, 600킬로미터쯤 떨어진 두 도시에서. 그리고 테이블에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고,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범한 담소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 우리가 살아간다는 행위에 포함된 의미 비슷한 것을 - 시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우연에 의해 어쩌다 실현된 단순한 시사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위드 더 비틀스> LP판을 안고 있던 아름다운 소녀도 그때 이후로 보지 못했다. 그녀는 아직도 1964년의 그 어둑한 학교 복도를,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걷고 있을까?
- 120p [위드 더 비틀스] 中
저는 마음속에 있는 그 이름을 그저 남몰래 혼자 사랑할 뿐입니다. 마치 부드러운 바람이 초원을 가만히 훑고 지나가듯이.
(중략)
네, 그것은 어찌 보면 궁극의 연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궁극의 고독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동전의 양면인 셈이지요. 그 둘은 꼭 달라붙어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중략)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연료입니다.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에게 귀중한 열원이 됩니다. 만약 그런 열원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 - 그리고 원숭이의 마음도- 풀 한 포기 없는 혹한의 황야가 되고 말겠지요.(후략)
- 201~203p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中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
(한쪽을 택하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 적도 있지만,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경우가 오히려 많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항상 스스로 선택해온 것도 아니다. 저쪽에서 나를 선택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223~224p [일인칭 단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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