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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_비문학

[에세이/성장기록] 모드 쥘리앵_완벽한 아이(줄거리, 결말, 서평, 책 속 구절)

by 삐와이 2020. 12. 6.

 

완벽한 아이 표지 (이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 작품 정보 >

 

- 제목 : 완벽한 아이

- 작가 : 모드 쥘리앵(Maude Julien)

- 옮긴이 : 윤진

- 출판사 : 복복서가

- 출간일 : 2020년 12월 4일

 

- 책/작가에 대한 배경지식

 

: 이 책은 작가 모드 쥘리앵의 성장과정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작가는 1957년 프랑스에서 부유한 아버지, 교육학을 전공한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무려 15년간의 세월을 잘못된 교육관을 가진 아버지의 밑에서 억압받으며 갇혀지내왔다. 이후 평생에 걸쳐 이루어진 학대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그녀는 법대를 나와 법무사로 활동하기도 했고 그녀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현재는 정신의학과 심리치료학을 전공해 심리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다.


< 줄거리, 결말 그리고 감상 >

 

※ 이 책은 위에서 소개한대로 작가의 학대받으며 살아온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입니다. 에세이의 특성 상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 생각되어 저의 짧은 감상평으로 이를 대체합니다. 감상평 가운데 책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이 점 양해해주세요.

 

운이 좋게도 나는 이 책을 출간 전 김영하 작가의 SNS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운이 좋게도 나는 이 책의 첫번째 독자 중 한 명이다.(이 책의 출판사인 복복서가의 첫번째 독자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되었습니다 :D) 사실 이 책의 이벤트에 응모할 당시만 해도 나는 책의 소개글을 찬찬히 읽어보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한 책이니 재밌을거야.'라는 생각 반, 그리고 '혼자 서점에 갔었다면 고르지 않았을 에세이를 읽으며 답답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 반으로 응모글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약 10일 뒤 책을 받고서야 나는 이 책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임을 알고 책장을 넘기기를 망설였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책을 통한 위로, 내 현실을 잊고 빠져들 수 있는 말랑말랑하고 몰입도 높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걱정은 기우였다. 이 책은 내가 원했던 그 이상의 위로와 희망을 내게 주었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루이 디디에라는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프리메이슨 비교의 교리를 광적으로 믿는 남자로 인류를 일으켜 세우라는 부름을 받을 선택받은 인간을 낳아 키우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는 서른네살의 나이에 한 광부의 여섯살 난 딸을 데려온다. 그리고 그녀를 기숙학교에 보내고 대학에서 교육학 학위까지 따도록 한다. 그 뒤 그는 그의 원대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그녀에게 1957년 11월 23일에 태어날 딸을 낳아달라고 요구한다. 그 딸은 바로 우리의 주인공 모드(Maude)이다. 이제 모드는 아버지가 원하는 초인으로 자라나기 위해 아버지가 세운 왕국(집)에서 십오년간 갇혀 살게 된다.

 

이 이야기는 책의 프롤로그 단 3페이지에 다 소개된다. 여기까지만 소개해도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앞으로 펼쳐질 모드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드는 아버지가 짠 시간표에 따라 1분 1초의 흐트러짐도 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모드는 교육학을 전공한 어머니의 교육만을 받고 외부인과 접촉하지 못한다. 모드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부모에게 질문하지 못하고(순수한 호기심조차 가질 수 없다.), 수용소 생활에서도 견딜 수 있을만큼 혹독한 환경에서 자라난다.(추운 겨울에도 난방을 틀지 않은 방에서 자고, 새벽에 일어나 겉옷을 입지않고 어두운 정원을 산책해야한다. 때로는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 때로는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잡고 담력 테스트도 해야한다.) 모드의 주위 인물은 모드를 육체적, 정서적으로 학대한다.(모드의 음악선생인 이브는 모드를 윽박지르고, 집안일을 돕는 일꾼 레몽은 성적으로 그녀를 학대한다.)


하지만 모드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모드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고 자의식이 꺾일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스스로의 자아를 세우는데 성공한다.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사랑'과 '예술'이다. 그녀는 그 누구도 그녀에게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지 않을 때 강아지 린다, 말 아르튀르, 오리 피투 등 집에서 키우는 동물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때로는 그 사랑이 그녀에게 굴레가 되기도 하지만(부모, 레몽은 그녀를 학대하고 협박할 때 그녀가 사랑하는 동물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녀는 그들로 인해 삶에의 의지를 이어온다. 나는 자신의 불행에 잠식되지 않고 다른 생명체를 향한 연민과 사랑이 그녀를 세상 밖으로 이끈 열쇠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녀는 세상 밖으로 나와서도 어린 시절의 그녀가 그랬듯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고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모드의 아버지는 수용소에서도 가장 대접받는 자는 음악가라며 모드에게 온갖 종류의 악기를 배울 것을 강요한다. 한 때 모드는 데콩브라는 제대로된 피아노 교육자를 만나 예술에 눈을 뜨지만 그녀와 데콩브 선생님의 정서적 교감이 강해지는 것을 염려한 부모의 뜻에 의해 이후 폭력적인 교육자 모드에 의해 집안에서만 음악 교육을 받게 된다. 하지만 모드는 음악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데콩브선생님이 목표로 제시한 '헝가리 랩소디'는 찢겼지만 찢기지 않은 채 그녀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자리잡는다. 결국 그녀는 부모의 집을 나와 본인이 사랑한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으며 처음으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그녀가 가까이한 예술은 음악만이 아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정해준 독서 목록 외 어렵사리 몇몇 책을 읽는데 성공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백치], [적과 흑]등 세기의 고전들을 읽으며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또 암흑 같은 세상에서 빛을 찾아내기도 한다. 결국 그녀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집안의 절대자였던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때 그녀는 스스로를 [적과 흑]에 나오는 마틸드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문학은 그녀에게 지도이자 나침반이었던 셈이다. 


몇몇 성장 에세이들은 '나는 이렇게까지 힘들었는데도 잘해냈어. 그러니까 너희도 잘해'라는 식의 교훈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런 류의 에세이들에 어쩔 수 없는 거부감을 느낀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용기와 의지에 감탄은 보내지만, '나는 네가 아닌데 너의 아픔이 내게 궁극적인 위로가 될 수는 없고 나는 너처럼 살 수는 없다.'같은 비딱한 반항심이 내 안에서 고개를 든다. 하지만 모드의 성장기는 내게 잘 해내는 것을 강요하지 않아서 좋았다.

 

어린 모드의 성장기는 대단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린 나의 모습과도 합일되는 부분이 있다. 모드는 세상을 사랑했고, 예술에서 그녀의 길을 찾았다. 작았던 그 빛은 점점 커져 결국은 모드의 길잡이가 되었다. 모드의 실질적 구세주는 그녀를 밖으로 꺼내 준 몰랭 선생님이지만 나는 숱한 사람들의 학대와 배신에도 모드가 그를 믿고 그의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랑과 예술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모드의 근본적 해결책은 우리에게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내일, 모든게 끝난 것만 같은 좌절과 상실의 고통.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아픔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그 때 우리는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때로는 발버둥칠 수록 현실의 고통은 늪처럼 우리를 빨아들이고 잠식시키기도 한다. 그 때 나는 이 책을 한번 더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모드가 그랬듯 아주 작은 애정들을 밖으로 분출하고(식물에 물을 주는 것, 단풍이 내려앉은 풍경을 바라보는 정도여도 좋다.) 삶을 감싸고 있는 예술로 마음을 달래고 위로 받아보는 것.(화려하게 치장하고 춤추는 아이돌의 무대여도 좋다. 그 어떤 예술도 제 몫을 해내는 순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끝에는 모드가 그랬듯 경이로운 진짜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 책은사랑의 이야기이고, 반짝이는 희망의 이야기이다.내게 그랬듯 희망이 필요한, 현실에 무력한 모든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닿기를 바란다.


 

복복서가의 첫번째 독자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 '완벽한 아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위해 소품을 준비하던 중 읽게 된 이 책은 알수 없는 뜨거움을 내 마음에 남겼다.

 

<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책속 구절들 > 

 

동물들이 우리에게 기쁨을 가르쳐주기도 하는 걸까?

혼란스러운 중에도 나에게는 그런 커다란 행복의 샘이 있다. 놀라운 행운이다.

(중략)

나는 아르튀르를 사랑하고, 린다를 사랑한다. 린다는 아르튀르를 사랑하고, 아르튀르는 린다를 사랑한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강하고 아름답다. 물론 힘겹기는 하다. 그래도 함께하는 사랑의 순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견뎌낼 수 있다. 

p83-4


나는 곧장 책 속에 빠져든다. 에드몽 당테스는 나다.([몬테크리스토 백작]에 나오는 주인공입니다.) 나는 그와 한몸이고, 그의 모든 감정을, 이유도 모른 채 닥친 끔찍한 처벌 앞에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어리둥절함을, 왜 이래야 하는지,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지하 감옥에 던져진 공포를 똑같이 느낀다. 

(중략)

나는 그레고르다. 하지만 따라가야 할 모델을, 본보기를, 이상을 찾았다. 당테스가 나에게 자유의 길을 보여준다.

p136-7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삶이 그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해준 것보다 훨씬 끔찍하다는 것을, 온통 폭력과 오욕과 복수와 배신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삶을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삶에 맞서 벽을 세우지 않는다. 반대로 삶을 사랑하고, 그 안에 잠기고, 필요하다면 아예 깊숙이 빠져버린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뭐든 겪어볼 만한 가치가 있어. 더이상 두려워하지 마."

p157


아버지는 나에게 블랑딘처럼 사자들을 굴복시키고, 잔 다르크처럼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그러면서 퐁파두르 부인처럼 섬세하고 기품 있게 행동하기를 기대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런 놀라운 일들을 해낸단 말인가. 진짜 슬픔은 다른 데 있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초라한 삶을 동경한다. 나는 아버지를 배신한 딸이다.

p 183


페리소의 '왜?'가 지금껏 내 머릿속에 맴돌던 모든 '왜?'들과 하나가 되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왜 린다를 가두지? 왜 페리소를 묶어두지? 왜 나는 밖에 나가면 안 되지? 왜 맛있는 음식을 즐기면 안되지? 왜 이브는 담뱃불을 내 무릎에 대고 끄지? 왜 레몽은 나에게 그 짓을 하지? 

(중략)

하지만 가장 중요한 '왜?'는 따로 있다. 왜 어머니는 나를 미워하지?

p212


나는 경이로울 만큼 행복하다.

내가 있는 곳은 수용소가 아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연주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다른 연주들,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함께 흥에 젖기 위해 연주한다.

나는 내 부모의 집을 나왔다. 정말로 나왔다.

p312


그렇게 운명이 나에게 구세주를 보냈을 때, 나는 그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몰랭 선생님은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찾고 삶 앞에서 늘 경이를 느끼는, 무한한 선의를 지닌 분이었다. 선생님은 내 아버지와 정반대편에 선, 아버지가 틀렸음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인간들은 훌륭하다.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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