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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_비문학

[에세이/여행기] 김영하_여행의 이유 (책 소개, 서평, 좋은 구절, 글귀)

by 삐와이 2020. 8. 24.

 

표지 이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 작품 정보, 줄거리 >

 

- 제목 : 여행의 이유

- 작가 : 김영하

- 줄거리(인터넷 교보문고 참고, 일부 편집)

 

- 작가소개 : 김영하 작가

 

   알쓸신잡 시즌1,3에 출연하면서 책을 즐겨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얼굴을 알린 유명작가 김영하. 김영하 작가는 1968년 생으로 어린시절 전학을 6번이나 하며 친구와 놀기보다는 책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군부독재 시절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이력도 있고, 동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로는 글쓰기를 통해 밥벌이를 하기로 결심한다. 1995년 스물여덟의 나이로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한 후 첫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검은 꽃], [너의 목소리가 들려], [살인자의 기억법]등 많은 작품이 흥행하면서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작가가 아니라면 본인을 무엇으로 정의하겠냐는 질문에 대해 김영하 작가는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생각한다고 답할 정도로 여행을 즐기고, 또 여행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 글쓰기에 대한 책과 여행에 대한 책은 꼭 한번 써보고 싶었다는 작가가 처음으로 여행에 대한 짧은 글들을 모아 펴낸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여행의 이유]이다.


< 책 속의 좋은 구절들, 그리고 짧은 나의 에세이>

 

※ 에세이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줄거리는 없지만, 중간중간 공감가는 구절들을 옮겼으니 오롯이 책 내용을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뒤로가기 눌러주시고, 근처 서점에서 직접 작품을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eBOOK으로 오며가며 읽었던 책 [여행의 이유]

 

    세상에 다른건 몰라도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어렵게 기획했던 신랑과의 캐나다 오로라투어를 취소당하고(거의 70%에 가까운 금액을 환불받지 못했으니 취소 했다는 표현보다는 취소 당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가을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는 아버지 환갑기념 국내여행도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자 나는 누르고 있던 여행에 대한 갈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갈증을 해소하기위해 펼쳐든 것이 바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였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책 꽤나 좋아하는 편으로 통하는 나였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김영하 작가의 그 어떤 글도 이전에 읽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나오는 TV프로그램도 본 적이 없었다.(변명하자면 우리 집 TV는 공중파만 나온다.) 그러니 이 책이 내게는 김영하 작가의 첫 작품이 된다. 소설가를 에세이로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덕분에 나는 두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책을 읽는 시간동안 '여행'에 대해 붕 떠있던 조각난 기억들을 짜맞추며 여행욕을 어느정도 해소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읽어보고 싶은 책 리스트가 많이 쌓인 것.(당연히 그 중 상당수가 김영하 작가의 소설들이다.) 

 

   이제 이 책의 좋은 구절들을 소개하며 내가 작가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 그리고 여행에 대해 내 머릿속을 떠다니던 나의 생각들도 짧게 기록해 보겠다.


※ eBook으로 읽었기 때문에 페이지 번호를 따로 기재하지는 않았고, 대신 몇 번째 목차에서 나온 구절인지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 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중략)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 1. [추방과 멀미] 中

 

: 나는 여행에 있어서 매우 계획적인 편에 속한다.

첫째 날은 어디로 가고, 어떤 음식점에 가고 이동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까지 다 정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속 편하게 잠자리에 드는 타입이랄까. 하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비행기 표만 끊고 숙소도 정하지 않고 인도로 여행한 경험이 있는 남자를 만났고, 덕분에 우리의 신혼여행은 계획 절반, 즉흥적인 선택이 절반을 차지한 중립적인 여행이 되었다.

 

   신혼여행이라는 특수성도 작용했겠지만 그 여행은 2년이 지난 지금도 눈 앞에 생생하다. 우리는 여행책자가 알려주지 않는 곳을 산책하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함께 보았고, 무슨 가게인지도 모른 채 현지인이 가는 가게를 무작정 따라들어가 그 가게의 유일한 동양인이 되어 맥주 한잔을 짠하고 부딪히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여행을 통해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모든 것이 내 통제하에 있는 것에 강하게 집착을 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여행을 끝나고 나면 나는 우리네 부모님이 그러했듯 에펠탑 앞에서, 콜로세움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나 여기 갔다왔잖아 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것. 그 뿐이었다. 가끔은 목적 없이 그냥 내던지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한자로 여행이 나그네 려, 다닐 행을 쓰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곳 저 곳 떠도는 나그네처럼 여행을 받아들이는 자세. 그 자세를 갖춘 사람만이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여행으로 인한 뜻밖의 보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주 떠도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오디세우스와 같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방랑을 멈추고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는 어떤 곳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할까? 과연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나는 거기에서 받아들여질까? 요술 장화를 신고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슐레밀,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내 운명은 아닐까? 그런데 그런 삶은 과연 온당한가? 요즘의 나 역시 이런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6. [그림자를 판 사나이] 中

 

: 이 구절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가 최고조에 이른 순간들을 돌이켜보았다. 대게 그 순간들은 내 일상의 권태와 허무가 최고조에 이르고, 여기서의 나는 내가 아닌 것 처럼 느껴질 때. 그 때가 바로 '떠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때였다.

약 10일동안 북유럽 국가들을 여행한 기억이 난다.

 

   짧다면 짧겠지만, 또 길다면 충분히 긴 그 시간을 낯선 나라에서 보내고 난 뒤 여행사진을 보다가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유럽에 있는 나는 엄청 해맑게 웃었는데. 오빠, 우리 유럽가서 살자! 한식당 운영하면서. 나 맨날 해맑게 웃을게 "그러자 뒤이어 나온 오빠의 말." 거길가면 또 한국에 있는 네가 해맑게 웃게 되겠지 "그리고 나는 몇일 뒤 나온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걸 확인하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사고 싶었던 옷을 카드로 결제했다.

 

   우습지 않은가. 나는 때로는 어디에 있던 나를 쫓아다니는 그림자를 없애고 싶어서 안달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내가 받아들여지는 곳, 나의 가치를 돈으로 인정해주는 곳에서 소속되어있음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우리네 삶은 이 '그림자 없애기'와 '그림자 달기' 사이의 줄다리기인가보다.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7.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中

 

: 대학시절 러시아에서는 약 1년. 그 외 유럽국가들에서는 짧으면 몇일. 길면 몇달의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다. 당돌하게도 '한국인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현지인처럼 살고, 현지어를 배워서 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갔건만, 내가 가지고 돌아온 것은 무방비하게 찐 살(변명하자면 러시아는 단것을 먹지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추위의 나라였다.)과 신세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그들과의 추억. 그뿐이었다.(이렇게 말하면 그 돈을 대준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약간의 어학실력 향상도 있었다고 해두자.)

 

   '여행에서 돌아와도 계속 연락해야지. 인연을 이어가야지.' 다짐했지만 여행의 인연은 딱 여행에서만 빛나게 되나 보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그리고 반 년에 한번 이어지던 연락이 지금은 '잘지내겠지'하고 마음 속으로만 안부를 전하는 사이로 남았다. 그럼 그 인연은 결국 의미가 없었던 것일까.

 

   김영하 작가가 쓴 위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그 인연이 여전히 내 안에서 빛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내가 경험했던 나라의 사람을 우연히 만나면 호감을 가지고 그들을 대했고, 난처한 상황에 처한 외국인들에게도 선뜻 도움을 준 경험이 있다.(T머니 카드만 사고 충전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외국인들을 위해 버스카드를 대신 찍어준다거나, 길을 안내해준다거나) 내가 받은 환대와 신뢰는 이렇게 베풀고 이렇게 베풀어진 환대와 신뢰를 통해 세상이 돌아가는 것. 그게 인류가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여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somebody)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중략)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 8. [노바디의 여행] 中

 

: 외국에 나가보면, 특히 우리나라 사람을 많이 접한 외국인을 만나면 그들만의 기준으로 '한국사람'이 정의되어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낄 때가 많다.(예를 들어 내가 들었던 말은 '한국사람들은 일본인, 중국인에 비해 쾌활해. 오픈마인드야.' 라던가. '한국사람들은 스타일이 좋지'등이 있다.) 대부분의 한국사람이라면 일본인,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것 보다는 외국인이 나를 한국인으로 알아줄 때가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한 외국인 교사로부터 "너는 참 한국인 답지않아."라는 말을 들은 경험이 있다. "그럼 제가 어디에서 온 것 같아요?"라고 반문하자 "글쎄. 내가 모르는 어떤 나라. 넌....한국인이라기엔 좀 심각한(진지한) 구석이 있어."라고 그는 답했고 나는 그 대답에 말 할 수 없는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한국이 대체 어디있는 나라야? 삼성은 일본 브랜드지?"같은 말에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열변을 토하면서도 한국인이 아닌 것 같다는 말에 느끼는 만족감이라니.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태도인가.

 

   지금와서 돌이켜보니 그 경험은 '아무것도 아닌 자'(노바디- 흔한 한국사람)이었던 내가 '특징을 지닌 자'(섬바디 - 한국인 답지 않은 자)가 된 경험이었기에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이렇게 여행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내가 알지 못했던 나라는 존재의 개별성을 확인하게 해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모든 인간은 노바디이자 섬바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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