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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_국내 문학

[현대/한국소설] 한강_채식주의자(책 소개, 서평, 줄거리, 책속 구절, 작가)

by 삐와이 2021. 1. 23.

채식주의자 표지 이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 작품 정보, 줄거리 >

 

- 제목 : 채식주의자

- 작가 : 한강

- 출판사 : 창비

- 출간일 : 2007년 10월 30일

 

- 작가 소개 : 한강

연세대 국문과 졸업 후 1993년 [문학과 사회]에 시를 발표,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의 국내 수많은 문학상을 시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200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로는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수상받으며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이후 발표한 [소년이 온다]도 20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다.

 

- 줄거리(인터넷 교보문고 참고)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작가 한강의 새로운 시도!


어린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개를 죽이는 장면이 뇌리에 박혀 점점 육식을 멀리하고 스스로가 나무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영혜를 주인공으로 각 편에서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남편, 《몽고반점》에서는 처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을 탐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사진작가인 영혜의 형부, 세번째 《나무 불꽃》에서는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을 목격했으나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혜가 화자로 등장한다.

잔잔한 목소리지만 숨 막힐 듯한 흡인력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상처받은 영혼의 고통과 식물적인 상상력을 결합시켜 섬뜩하지만 아름다운 미적 경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저자가 발표해온 작품에 등장했던 욕망, 식물성, 죽음, 존재론 등의 문제를 한데 집약시켜놓은 것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추천 대상 :

-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을 수상한 유명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분들

- 흡입력 높고 독창적인 소재의 소설을 원하는 분들

- 죽음/어두운내면/욕망 을 다루는 어둡고 강력한 소재의 소설을 읽고 싶은 분들

 

한줄평 :

어쩌면 피하고 싶을 수 있는 강력한 이야기. 하지만 엄청난 흡입력으로 독자들의 내면의 웅어리를 끌어올려주는 이야기.


< 짧은 감상평/리뷰 >

※ 어쩔 수 없이 작품의 내용, 스포를 포함하는 리뷰입니다. 온전히 작품을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근처 서점에서 책을 먼저 읽어주세요!

 

취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가장 나를 곤란하게 했던 것은 바로 '자기소개서'였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준비한다는 자격증인 토익조차도 공부한 이력이 없던, '대학생이라면 인문학을 공부하고 지성인으로서의 교양을 쌓아야지' 하는 허영만을 살찌우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던 나는 첫 자기소개서에 무엇을 써야하나 고민하며 깜빡이는 모니터 화면만 노려보았던 기억이 난다.

 

수십, 수백번의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뒤에야 남들과 비슷한, 나를 소개한게 맞나 싶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에피소드+입사하면 이렇게 귀사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따위를 쓴) 나서야 몇몇 기업에서 합격 통지를 받고 어렵게 취업을 한 뒤 나는 또 나를 직시할 기회는 저기 어딘가로 치워둔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도 나를 증명해보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나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건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할지.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을 한건지, 투털대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다면 행복했을지.[채식주의자] 속 화자들처럼 말이다.


[채식주의자]에는 알 수 없는 꿈을 꾼 이후로 채식을 하게 된, (정확히 말하면 고기를 먹을 수 없게된) 영혜와 그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신기한 것은 영혜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은 총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이라는 총 3편의 중편으로 나누어져있는데 첫번째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의 시점에서, 두번째 [몽고반점]은 비디오아트를 하는 예술가 영혜의 형부의 입장에서, 마지막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의 생각을 따라간다. 이 3편의 중편에서 화자는 바뀌지만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각기 다른 화자의 입장을 통해 영혜의 상태를 따라가게 된다.

 

소설 속 유일하게 이름을 가지고 있는 영혜, 이 모든 이야기가 굴러가게끔 만들었던 영혜는 어떤 인물일까. 그녀는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안타깝게도 독자들은 영혜의 이름 말고는 그 무엇도 그녀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한다.(내가 이 책을 다 읽고 이름만 분명한 자기소개서라는 양식을 떠올린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각기 다른 화자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생각, 말을 쫓아가더라도 그녀가 육식을 할 수 없게 된 이유를 콕 집어내는 것은 쉬운게 아니다. 영혜의 언니가 이미 벌어진 사건들을 돌이켜보며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영혜를 지켜낼 수 있었다면, 영혜의 결혼을 막을 수 있었다면 등을 곱씹는 것처럼 독자들도 그저 추측할 뿐이다. 아버지의 학대, 그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날카로움, 그녀를 물었던 개에게 가한 인간의 잔혹한 행동 등이 그녀를 채식주의자로 내몬 것이 아닐까하고.


반면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분명해지는 것은 3명의 화자, 즉 일반인의 범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점이었다. 그들은 모두 안다고 생각했던, 명확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불현듯 잃어버리고 모른다고 고백하거나, 기존의 삶과 단절되고 만다.

 

영혜의 남편은 영혜를 사랑해서 결혼했다기보다는 그녀가 그가 생각하는 결혼 상대로 적합해서 결혼했다. 즉, 그녀를 안다고 생각하고 이만하면 내 아내감으로 괜찮다라고 판정한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고백한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라고.

 

두번째 화자 영혜의 형부는 아내를 통해 '영혜는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엉덩이에 푸르스름한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노라'는 얘기를 우연히 전해듣고 은밀하게 영혜를 향한 예술적, 육체적 끌림을 느낀다. 그의 욕망은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는 것이었기에 그를 더 괴롭히고 가슴 뛰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그간 해온 작품, 삶이 모두 그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드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실제로 그는 금기된 열망을 실현에 옮김으로써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단절되고 만다.

 

마지막 화자 영혜의 언니는 교통사고의 피해자처럼 평온하고 안락한 일상에서 내팽개쳐진 존재로 비춰지지만, 알고보면 그녀는 동생 못지않게 내면을 향한 묵직한 칼날로인해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딸로써, 아내로써, 하다못해 선량한 시민으로서 늘 성실히 살아오는 것으로 내면의 고통을 외면하던 그녀는 동생과 남편이 벌인 일련의 사건으로 내면의 고통을 직시하게 된다. 동생이 선택한 삶의 형태를 보며 그녀는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하고, 또 그녀의 삶이 거짓이었음을. 그녀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한다.


세명의 화자가 여전히 삶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혹은 기존의 삶과 단절되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반면 우리의 주인공 영혜는 결국 불현듯 자신에게 떠오른 이미지를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지 명확히 결정한다. 

처음에 영혜는 꿈 속 이미지들로 인해 고기를 먹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하고 채식으로 내몰리지만 자신의 몸에 꽃을 그려넣는 경험을 하며 꿈 속 이미지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것임을 인지하고, 결국 스스로 나무가 되기로 결심한다. 나무가 되는 삶을 선택한 것은 그녀에게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끝까지 사회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영혜의 선택은 다소 극단적인 케이스지만, 그녀를 둘러싼 일반적인 사람들이 스스로를, 삶을 바로 보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반면 영혜는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시사하는 바가 있다. '평범함'으로 통칭되는 사회적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 그들을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평범한 삶의 범주에서 벗어나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나를 비추는 거울 파편을 꺼내게 되는 소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내게 그런 작품이었다.  


< 책 속 구절들 >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  22p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나는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 43p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있는 거야.

(중략)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 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 61p


그것은 그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중략)

여인의 엉덩이 가운데서 푸른 꽃이 열리는 장면은 바로 그 순간 그를 충격했다. - 74p


단 한순간에 그는 지쳤고, 삶이 넌더리났고, 삶을 담은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없었다.

십여년 동안 자신이 해온 모든 작업이 조용히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알았던, 혹은 안다고 믿었던 어떤 사람의 것이었다. 83~34p


"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그녀는 말했다.

"고기만 안 먹으면 그 얼굴들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그녀의 말에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의지와 무관하게 차츰 그의 눈은 감겼다.

"그러니까....이제 알겠어요. 그게 내 뱃속 얼굴이라는걸.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이라는 걸."

앞 뒤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을 자장가 삼아, 그는 끝없이 수직으로 낙하하듯 잠들었다.

"이제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하지 않을 거에요." - 142~143p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그녀는 다시 한번 집 안의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그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과 꼭 같았다. -2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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