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정보 >
- 제목 : 모순
- 작가 : 양귀자
< 독서 감상 : 삶은 모순일까. 아니면 이게 그냥 삶일까. >
※ 감상문 중간에 결말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 책의 구절을 인용한 내용이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감상을 건너뛰어 책의 좋은 구절들만 확인해주세요.
어떤 방패도 막아낼 수 있는 창,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 이 둘이 공존한다면 이 세상은 모순일까. 이 책의 제목은 담백하게 그냥 '모순'이다. 그리고 스물다섯의 미혼 여성 '안진진'의 삶을 보여주며, 무엇이 모순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안진진은 스스로를 양감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존재로 평하며, 책의 첫 페이지부터 생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녀는 그녀의 인생이 어머니와 무관해야한다고 하지만, 정작 삶이란건 담쟁이 덩쿨마냥 얽히고 설켜있어 그녀의 삶은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란성 쌍둥이로 이모와 똑같이 생겼었다고 한다. 이 문장이 과거형인 이유는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각기 다른 결혼으로 인해 인생도, 외모도, 삶의 수준도 완전히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안진진의 어머니는 감정적이고 다정하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편을 만나
싸우고, 악다구니를 쓰고, 집안의 불행을 몰아내기 위해 억척같이 살아야 하는 여성으로 변했고, 쌍둥이 이모는 인생의 계획이 뚜렷한 남자를 만나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부자집 마나님의 삶, 하지만 변수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어릴적 모든게 비슷했던 쌍둥이 자매의 인생은 안진진이 이십이 중반이 된 지금 너무 많이 바뀌어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안진진이 스스로의 인생을 전 생애를 걸고 탐구하겠다고 결심한 바로 이 시점은 엄마와 이모의 삶이 바뀔즈음, 그러니까 결혼을 생각할 나이 즈음이다. 게다가 운명의 장난인지 그녀의 앞에는 어머니의 길을 가게 해줄 것 같은 남자와 이모의 길을 가게 해줄 것 같은 남자가 각각 나타난다.
안진진은 두 남자 사이에서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스스로의 삶의 양감을 늘리기 위해 결혼에 빠져볼 결심으로 한 해를 보낸다. 결혼이라는 목적으로 두남자와 시간을 쌓아갈 때 그녀에게는 필연적으로 어머니와 이모의 삶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과적으로 안진진은 가난하지만 낭만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순수한 청년 김장우에게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녀가 이 감정을 '사랑일까.' 깨닫는 순간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버지의 환영이다. 어머니에게 잦은 폭력을 보이고, 심지어 지금은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긴 아버지는 어느날 술을 마신 뒤 '안진진의 어머니가 자신을 가두고 있다고, 당신은 나의 감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안진진은 김장우와 하룻밤을 보내면서 술에 취한 채 김장우를 때리며 '당신의 사랑이 나를 숨막히게 한다, 구속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반대 쪽은 어떨까. 계획적이고, 스스로 세운 계획에 모든 세상이 동조해줄 것이라고 믿는 남자 나영규, 그에게는 사랑도 결혼으로 가는 과정일뿐이다. 그와 만남을 가질 때 안진진은 '영화보고 난 다음에 뭐하지?' 따위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오늘 만남 이후 아마 결혼식 입장 방법까지 그의 머릿속에는 다 계획이 되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진진은 나영규와 만날 때 옅은 한숨을 쉬고, 이모의 삶을 떠올린다. 진진이와 먹는 그다지 맛있지 않은 파스타가 이탈리아 유명 레스토랑 보다 맛있다는, 유럽에 가서 추억을 만들기보다 유명스팟에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인화해서 주변에 보여주는데 몰두하는 이모부를 둔 이모를 떠올린다.
삶의 갈림길에서 안진진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안진진의 선택 이 전에 우리는 어머니와 이모의 마지막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느날 어머니에 앞에는 부랑자의 모습을 한 채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나타난다. 어머니는 절망했을까. 그간의 삶에 단련된 안진진의 어머니는 동생의 감옥살이, 치매 걸린 아버지의 귀환을 계기로 두배로 삶에 대한 열정을 뿜어낸다.
어느날 안진진의 이모는 진진에게 소포를 보낸다. 소포에는 네가 나를 수습해달라는 편지와, 집 열쇠가 담겨있다. 이모의 가족은 그 누구도 납득하지 못했던 이모의 죽음을 안진진은 받아들인다. 그리고 안진진은 결혼을 한다. 나영규와.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의 인물들의 삶 중 무엇이 모순인지를 되짚어보게 된다. 불행을 삶의 원동력으로 쓰는 안진진의 어머니인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자살을 택한 안진진의 이모인가, 사랑일지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영규와 결혼한 안진진인가.
반대로 뒤집어 보면, 우리는 불행을 목전에 두었어도 다른 가족을 위해 생을 포기할 수 없는 안진진의 어머니도 이해할 수 있고, 삶에 그 어떤 것도 주체적일 수 없었던 이모의 죽음도 이해할 수 있고, 심지어 본인에게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림자를 강하게 느낀 안진진이 그와 반대된 선택을 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이것도 이해할 수 있고 저것도 이해할 수 있으면,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
우리는 책의 시작과 끝에서 안진진이 인생을 어떻게 평하는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결국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려고 한 것은 '여러분, 이런 모순된 삶도 있어요.'가 아니라 '삶은 원래 모순 덩어리랍니다.'인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삶에는 무엇으로도 뚫을 수 있는 창도,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는 방패도 있고, 모순의 상황에서 피하기 위해 날세워 살 필요도, 그런다고 모순의 늪에 빠지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 작가는 그것을 말하고자 했던게 아닐까. 당장 뉴스만 보아도 말도 안되는 일이 산더미 처럼 일어나고, 어제는 이 말을 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처럼 오늘은 이 말을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인생은 권선징악의 세계도, 인과응보의 세계도 아니다. 우리는 이 삶에서 결국 안진진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니, 안진진처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도, 책 [모순]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는 이유일 것이다.
< 잊고 싶지 않은 책의 구절들 >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量感)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임에 틀림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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