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정보 >
- 제목 : 시선으로부터
- 작가 : 정세랑
- 줄거리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이 소설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원치않는 외국살이를 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여류작가 심시선이 죽은 뒤, 그녀의 자손들이 심시선의 조각을 맞춰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20세기의 막바지를 살아낸 심시선의 딸들과 21세기를 살아가는 손녀 화수, 우윤 등 심시선으로부터 비롯된 여성들의 삶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 독서 감상 : 시선으로부터, 그리고 또 다시 시선으로부터 >
※ 감상문 중간에 결말을 유추 할 수 있는 내용, 책의 구절을 인용한 내용이 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우연히도 이 책을 지난해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기일 즈음 읽게 되었다. 우리 집은 전통을 따르는 집안이니 아주 전통적인 방법으로 '홍동백서(紅東白西)'니 '조율이시(棗栗梨枾)'니 하며 외할머니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게 될 것이다. 아마 그 제사상은 외숙모들과 엄마가 차리게 될 것이고, 그 제사상을 앞에 두고는 외삼촌과 사위들만 절을 하겠지... 심시선 가(家)의 제사 이야기를 쫓으며, 나는 참석하지 못할 외할머니의 제사를 머리 속으로 그려본다.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지금의 나는, 세상은 비롯되었는가 생각해본다.
이 책의 첫 장은 '심시선 가계도'로 시작한다. 무슨 러시아 장편소설도 아니고, 내가 인물도 하나 제대로 기억 못해서 첫장을 뒤적이게 될까 싶었건만, 나도 모르게 언제든 찾아볼 수 있게 첫 장에 손가락을 하나 끼워둔 채 책을 읽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단편 소설치고는 유난히 등장인물들이 많은데다,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탄탄한 서사를 안고 있는 인물들로 가볍게 스쳐지나지 않아서 '이 친구가 그 친구가 맞았던가.' '이 친구 직업이 뭐였지?'하면서 다시금 첫 장을 뒤적이게 되는 것이다.
시선의 큰 딸 명혜의 주도로 심시선가 사람들은 시선의 죽음 10주기를 맞아 지금의 '심시선'이 시작되게 한 곳, 하와이에서 저 마다의 방식으로 '심시선'을 기리기로 한다. 그리고 매 장마다 이야기는 그 어떤 예고도 없이 여행 길에 오른 10명의 가족들 중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장은 어릴 적 죽을 고비를 넘긴 우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어떤 장은 그런 우윤으로 인해 쉼 없이 읽기를 시작한 시선의 며느리 난정의 이야기가, 그리고 또 어떤 장은 어느 날 세상으로부터 받은 폭력에서 피해자가 된 화수가 등장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 인물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인물들은 작품 안에서 바로 자신의 내면을 꺼내보이지 않고, 저 마다 시선의 제사상에 올릴 물건을 찾는 미션을 수행하면서, 시선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면서 슬쩍슬쩍 자신의 내면을 내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구를 사귀듯 그렇게 천천히 심시선가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된다.
심시선의 제사상이 차려지는 즈음에 이르러서는 '이건 화수의 것이구나.', '이건 우리 해림이가 올린거지.' '이건 경아가 준비한건데 그 이유는 엄마와 나만의 연대감을 느끼게 하는 물건이기 때문이야.' 하고 인물들과 물건을 짝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아...우리는 이렇게 심시선을 이해하게 되는구나.' 시선에게 선물하고 싶은 하와이에서의 추억들은 결국 시선이 10명의 사람들에게 어떤 조각을 남겼는지를 보여주고 그 조각들이 맞춰지는 순간, 여기저기 흩어진 심시선이라는 사람도 완성된다.
이 책은 심시선스럽게도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선으로부터 시작된 여행을 끝으로 우리는 이 인물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새로 쓰게 될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화수는 상처입은 피해자에서 벗어나 세상을 따갑다고, 나는 뉴스를 그냥 통과시킬 수는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지수는 체이스를 따라 유조선 기름 피해를 입은 펭귄을 씻기는 일을 하러 떠나고, 규림과 해림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기존의 질서대로는 살아가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책의 끝부분에 이르러 우리는 화수로부터, 지수로부터, 해림으로부터 라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상상하며 책장을 덮게 된다.
오늘을 살기 바쁜 우리는 과거를 추억하고 나의 뿌리를 기억하는 일에는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시선으로부터]를 읽으며 나는 실존하지 않지만 분명 존재했던 '심시선'의 삶에서 나의 뿌리를 찾아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심시선의 아픔은 우리 할머니의 아픔이었고, 심시선으로부터 비롯한 자녀들은 우리의 부모님이었고, 심시선의 손녀들은 나와 내 동료들이었다. 그리고 책 속에서 화수가 여러번 되뇌이듯 우리 사회는 아직 시선이 살아가는 사회와 일면 다르지 않다. 시선이 근절시키고 가길 바랬던 따가운 사회의 공기는 아직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다.
나는 이 책이 색다른 제사 문화를 보여주려고, 기존의 남성 중심의 사회를 비판하려고 쓴 작품은 아니라고 믿는다. 이 책은 형식에 얽메이지 않고 과거를 추억하는 여정을 통해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정하는 인물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우리만의 시선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이 책의 그 어떤 인물들도 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고, 모두 각자의 개성대로 당당히 살아가는데 우리라고 왜 그렇게 살지 못할 것인가. 우리 모두 시선으로부터 비롯한 자녀들이 아닌가. 이제 화수, 지수, 해림이 그랬듯 우리는 심시선스럽게 우리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갈 차례이다.
< 잊고 싶지 않은 책의 구절들 >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 [시선으로부터] 83페이지 -
“할머니 덕에 중산층이 몰락하는 시대에 몰락하지 않을 수 있었죠. 행운이란 건 알아요. 그래도 요즘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걸 모조리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공기가 따가워서 낳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하는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서는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한국은 공기가 따가워요.”
- [시선으로부터] 322페이지 -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 [시선으로부터] 331페이지 -
※ 정세랑 작가의 신작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기록한 개인의 감상과 글입니다. 혹여 잘못 기재된 부분이 있다면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수정하겠습니다. 댓글이나, 공감으로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시는 것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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