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기_비문학

[수필/에세이]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 (줄거리, 서평, 책소개, 글귀)

by 삐와이 2020. 7. 29.

 

표지 이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 작품 정보, 줄거리 >

 

- 제목 :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

- 작가 : 최가을

- 줄거리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둘이 살아도 충만했기에 딩크로 살려다가 가임기를 훌쩍 넘겨 후회할까봐 고민 끝에 ‘피임을 해제한’ 삼십대 중반의 부부.

 

피임만 안 하면 임신이 되는 줄 알았는데, 생리 주기가 일정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아기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자연임신 시도부터 자궁근종 수술을 거쳐 시험관 시술까지 모든 일이 계획과는 어긋난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정말 안 생기느냐”고 분통을 터뜨리고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뜨기는 뜨는 거냐” 하며 포기할 즈음 결국 아기와 만나게 된다.

난임이라는 인생의 난제를 마주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365일 24시간 괴롭고 우울하게 지낸 기록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아 움켜쥔 기록을 오롯이 담았다.


< 감상, 그리고 짧은 나의 에세이 >

 

※ 에세이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줄거리는 없지만, 중간중간 공감가는 구절들을 옮겼으니 오롯이 책 내용을 그대로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 눌러주시고, 근처 서점에서 직접 작품을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재밌게 읽었던 소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의 마지막 장면에서 화수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가족들 앞에서 선언한다. 이렇게 아픈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싶지않다는 이유로.

 

   나는 화수의 이 선언을 보며, 결혼 전 직장동료와 차를 타고 가다가 아기들이 좋다는 얘기를 하다가 "어쩌면 아이를 낳는건 이기적인 선택일지도 몰라요."라고 발언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열변을 토하는 미혼의 나를 보며 동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어'라는 나의 경솔한 발언의 증인은 나의 가족 중에도 있다.

"너는 정말 마음이 갈대구나. 어떻게 그렇게 계속 말이 바뀌니."라고 말하는 우리 아빠.

"나는 결혼 안하고 애도 안낳고 나중에 엄마아빠랑 살려고."라고 말하던 딸을 둔 아빠는 이제 딸을 시집보낸지 2년째이다.

결혼을 하겠다고 신랑감을 데려온 이후로 배신감을 느낀 아빠는 아마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 발언도 그저 흘러가는 변덕스러운 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래도 그 발언도 이미 내뱉어진 말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결혼한지 2년차 누군가는 아직 이르다고 하지만, 아이를 가지고 싶어진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아직 찾아오지 않고있다. "결혼도 하지않고, 애도 안낳는다며~", "아이를 낳기에는 가혹한 세상이라며~"삼신할머니가 경솔한 내 발언들을 다 듣고 약을 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별마당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한 이후 반가움과 씁쓸함, 슬픔과 기쁨 이 모순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낀 나는 앉은 자리에서 책을 훌쩍 다 읽어버렸다.

 

   임신/출산과 관련된 글은 서점에서 책장 한켠을 다 채우고도 남는데 아기를 기다린 시간이 오래된 사람들을 위한 코너는 눈씻고 찾아봐도 한 권, 두 권 겨우 만날정도인지...그래서 난임카페는 새벽 2시가 되어도 서로 증상을 공유하며 위로하고, 답변을 주고받는 예비 엄마들이 북적이고, 그래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어디 딱히 물어볼 곳은 없고 애꿋은 인터넷 검색창에서만 '임신 가능성', '임신 증상'등을 몇시간 째 검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지 모를 사람들과 생기는 동지애.

하지만, 한자리에 쭉 앉아서 수다라도 떨고싶은데 '무슨 좋은 주제라고....' 하는 마음에 망설여지는 다소 수줍은 동지애.

나는 그것을 이 책을 통해 나눌 수 있었다. 읽는 시간동안

"어? 여기 내가 갔던 곳인거 같아 그치?" 하면서 책을 신랑에게 건네기도 하고, 

"이거봐. 역시 남편들은 이런걸 모른다니까. 오빠도 이렇게 생각했지?" 하고 타박하기도 하고

"나도 이랬어. 그때. 오빠한테도 말못했었는데...." 하면서 뒤늦은 고백을 하기도 했다.


   작가는 이해받고 싶어서 이 글을 쓴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람에서 이 글을 쓰게 된걸까. 이 책의 잠재적 독자들은 모두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는 부부들일까.

 

   친구의 동생이 갑작스레 희귀병으로 중환자실로 들어간 경험이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불행에 친구는 밥도 잘 먹지 않았고, 얼굴이 늘 하얗게 질려있었다.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다 잘될거라고. 조금만 힘내자고.' 상투적인 말만 늘어놓았던 때가 있었다. 그 위로가 과연 위로였을지, 흡수 되긴 했을지, 아니면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는거야!'하고 튕겨져 나왔을지 나는 모른다.

 

   그 때 내가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책을 만났더라면 친구를 좀 더 이해하고, 잘 위로해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 적어도 늘 병실 앞에서 우두커니 시간을 보냈을 그 때의 친구에게 책이라도 건네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 그랬다면 친구는 좀 더 성실하게 경험을 늘어놓는, 다정한 작가의 도움을 빌어 더 빨리 웃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의 독자는 비단 난임부부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언젠가 직장동료, 동생, 언니가 겪을지도 모를 일, 언젠가 내가 고민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는 것은 시기에 맞는 위로를 하게 해주고, 예기치 못하게 상처주지 않을 수 있게 해주고, 미리 대비할 수 있게해주고, 더 나아가 나의 시야를 넓히는데 도움이 되니까 말이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웃음와 위트가 있다.  그래서 작가와 같은 경험,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며 일상에서의 희노애락을 느낄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 작가 주변의 다정한 사람들, 그리고 마침내 이룬 작가의 결실, 좌절의 시간 동안의 작가가 보인 긍정적인 마음과 강인함을 기억하며, 나도 오늘 하루를 씩씩하게 웃으며 보내보리라 다짐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보면 언젠가 삼신할머니도 "이제야 준비가 됐구나." 하고 웃으며 아기를 보내주실지 모르니까 말이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 글귀 >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애보다 나 자신이 더 소중한데, 내가 왜 이런 개고생을 해야 하지.'

그래서 나는... 트림을 하면서 울었다. 내 의지로는 트림이 멈춰지지 않았다. 눈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입으로는 트림을 하고 눈으로는 눈물을 철철 흘리고...놀라서 왜 우느냐고 묻는 신랑에게 단 한마디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입은 하나인데 트림과 설명을 동시에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렇게 루프틴과 5개월을 함께 지내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분명히 갱년기를 지났을 텐데, 엄마가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났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장면처럼, 엄마도 갑자기 얼굴이 시뻘게지거나, 우리집에 놀러온 엄마 친구들이 번갈아가면서 "요즘 갱년기라 갑자기 더워"라며 창문 열어달라고 요청하시던 단편적인 기억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임신이 안 된다는 점만 제외하면 인생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직장생활도 결혼생활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단, 아기만 안 생길뿐.

 

  미셸 오바마가 쓴 자서전 [비커밍]을 보면 오바마 부부가 시험관 시술로 두 딸을 만나게 됐다고 하는데, 이 책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미셸은 시험관 시술 전 임신이 안 되던 시기를 버락 오바마와 완벽하게 행복했지만 '행복의 구김살'이 있던 때라고 회상한다.


   "요샌 시험관 하면 금방 애 생긴다던데?" "쌍둥이 갖고 싶으면 시험관 하면 되지 않아?" 이런 무신경한 말들은 시험관 시술을 거듭하는 사람들에게는 속 편한 소리일 뿐이다.

 

   의학 기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도 풀 수 없는 부분이 아직 남아 있다. 과거의 나를 포함해 고차수 시험관 시술자들은 그 벽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진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치인다고 느낄 때는 늘 내가 소수가 되어서 상처를 받을 때였다. 참 미묘한 문제인 것이, 분명히 상처는 받았는데 항의할 대상이 없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