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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_비문학

[독서에세이/비문학] 쾌락독서 (책소개, 서평, 좋은구절, 글귀)

by 삐와이 2020. 8. 9.

 

표지 이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 작품 정보, 줄거리 >

 

- 제목 : 쾌락독서

- 작가 : 문유석

- 줄거리 (인터넷 교보문고 참고, 일부 편집)

 

책 중독자로 살아온 문유석 판사의 즐거운 독서 놀이!

글 쓰는 판사, 소문난 다독가로 알려진 저자 문유석의 독서 에세이 『쾌락독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책 읽기에 빠져 성인용 책은 물론, 신문의 광고와 부고까지 읽는 책 중독자였던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주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문유석 판사는 '짜샤이 이론'에 의거해 책을 고르고 읽는다. 중식당의 기본 밑반찬인 짜샤이가 맛있는 집은 음식도 맛있었다는 경험에 빗댄 방법으로, 처음 30페이지를 먼저 읽어보고 내 취향의 책이다 싶으면 끝까지 읽어나가는 책 읽기다.

 

내가 재미있고 내가 즐거우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저자는 고시생 시절 《슬램덩크》가 안겨준 뭉클함, 김용과 무라카미 하루키 전작을 탐독한 이유 등 책과 함께 가슴 설레고 즐거웠던 책 덕후 인생을 솔직하게 펼쳐 보이며 책과 함께 노는 즐거움의 특별함, 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 작가 소개 : 문유석 판사

  작가 스스로도 작품에서 누누이 밝히고 있듯,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판사'라는 작가의 직업의 의외성, 힘이 어느정도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 어떤 작품을 소개할 때 보다 작가소개가 의미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유석 판사는 1997년부터 판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면 현재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책을 좋아했던 유년시절을 거쳐 현재는 칼럼,대본,에세이까지도 집필하고 있다. 유명해진 계기는 칼럼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JTBC드라마 [미스함무라비]가 있으며 [개인주의자선언], [판사유감]등의 책도 출간당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 책 속의 좋은 구절들, 그리고 짧은 나의 에세이 >

 

※ 에세이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줄거리는 없지만, 중간중간 공감가는 구절들을 옮겼으니 오롯이 책 내용을 그대로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뒤로가기 눌러주시고, 근처 서점에서 직접 작품을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에세이를 즐겨 읽지는 않는다. 진짜 사람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듣는 것 보다는 영화, 문학, 음악 등에서 한 번 필터를 거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만족하는 편이기도 하고 진짜 생각, 진짜 감정을 듣게 되면 온 힘을 다해 신경을 써줘야할 것 같은 부채감이 생겨서 진이 빠진다. (한마디로 내 자신을 케어하기도 급급한 인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내가 벌써 2번째 문유석 판사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이동 시간이 긴 여행 중 e-book으로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으며 나의 일상에 대입해 SNS에 짧은 글은 올린 탓이 되겠다.

 

   내가 일하는 직장은 개인보다는 조직이 우선인 다소 오래된 조직이다. 직장이라는 존재가 다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나도 '요즘 젊은 것들'에 속하는지라 '윗사람이 퇴근하기 전에 퇴근하면 안되고', '윗사람의 지시에는 토달면 안되는' 조직문화를 무조건 받아들이기에는 속에서 뜨뜻미지근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나의 일상에서 떨어져 속에서 올라오는 그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으며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서를 하고 SNS에 '신중하게 타인을, 사회를 돌아보되, 집단으로 인해 내 행복을 기꺼이 침해당하지는 말자.'라는 느낌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 포스팅을 읽은 것으로 짐작되는 직장 동료 중 한명이 내 생일에 선물로 준 책이 바로 같은 저자의 다른 에세이 [쾌락 독서]이다. 생일이 지난지 8개월이 된 지금에서야 시간이 남는다는 이유로 휘리릭 나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쾌락독서]를 선택적으로 읽어내려갔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책벌레였던 저자가 책에 빠지게 된 계기, 책을 읽었던 이유,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까지 '책'을 붙일 수 있는 생각을 모두 옮겨 놓은 책이다. 저자가 쨔사이 이론에서 본인의 독서취향을 밝힌 바와 같이 저자의 글 역시 마냥 교훈적이거나 딱딱하지만은 않다.(이 부분에서 나는 '아....이 분은 적어도 꼰대는 아닐거야.'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본인은 싫다고 하면서 싫다고 하는 부분을 답습하는 행위가 꼰대의 조건 TOP5 안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야한 부분을 찾아 읽기 위해 온갖 고전들을 탐독하게 되었다는 솔직한 자기고백부터 실없는 농담까지 곳곳에 등장해 가볍게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그리고 머릿속에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나의 독서 기억들을 발굴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제 막 책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입장에서 이번에도 역시 시기적절하게 도움이 되는 책을 읽게 해준 이 책의 작가에게 감사하며, 작가의 책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미끼로 딸려나온 나의 책이야기들도 소소하게 기록해 본다.


 

침대맡에 두고 짧게짧게 한챕터씩 읽어내려갔던 [쾌락독서]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건 지나간 인연들이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 안에 생겨났던 그 순간의 감정들이다.

헛된 허세나 과시욕 따위를 배제하고 그때 그 책의 무엇을 왜 좋아했고, 그로 인해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책을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방법들'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15p

 

: 시간이 지난 뒤 우연히 어느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 노래는 내가 중학생 때 친구 OO이와 처음으로 이어폰을 같이 끼고 놀았던 노래였지...'

내 안에 있었는지도 모를 기억이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게 책과 음악, 영화는 내 시간의 기록장이다. 키가 어느정도 컸는지 보자고 어릴 때 집 벽에 연필로 선을 그어놓듯 나의 십대, 이십대, 삼십대는 책과 음악, 영화와 함께 했고, 그 안에 나의 우정, 사랑, 부끄러움, 좌절의 감정들을 담았다. 우연히 그 기록을 마주할 때의 반가움은 '그래도 나 잘 버텼네. 잘 살고 있네.'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내게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면 그건 반박하든 해명하든 싸우든 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 취향의 사람들도 아니고 내 인생에 아무 상관 없는 존재들이다. (중략)

나를 에워싸고 그들의 언어로 떠들어대는 릴리퍼트 소인들일 뿐인 것이다.

그걸 깨닫고 나니 나만의 '험담에 대처하기' 솔루션이 절로 생겼다. 내가 찾은 마법의 단어는 이거다.

"그러게(싱긋 미소 지으며)". 핵심은 산들바람같이 상쾌해야한다는 것. 진심으로. 말은 한마디 '매직워드'로 족하다. - 32p

 

: 무엇을 하든 나는 적어도 단 한가지는 배울 점을 찾아 체화하려고 노력한다. 대학 강의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F를 받은 과목에서도 나는 학점은 못받아도 단 한가지 교훈은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다 못해 그게 '내가 어른이 되서 뭔가 가르치게 되면 저렇게 무성의하게 교육자료를 만들지는 말아야지'일지라도...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숱한 생각, 태도가 나오지만 요즘 내게 가장 필요한 조언은 바로 타인의 시선에서 쿨해지는 "그러게"태도였다. 아직 직장생활 경험으로 치면 5년차. 상대방의 무성의한 말에 금새 화가 치밀고, 억울한 일도 많은 걸 보면 물로 치면 나는 아직 계곡 쯤에 머무는 것 같다. 물결 잔잔한 깊은 바다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태도 "그러게"그리고 싱긋.

 

오늘도 책 값, 책을 읽는 데 들은 시간 이상의 값을 찾았다. 싱긋.


내가 청소년기에 길고 긴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어릴수록, 젊을수록 하루도 길고 일 년도 길고 남아 있는 살아갈 나날은 끝도 없어보였다. (중략)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라져버렸다. 대하 소설은커녕 조금만 두꺼운 책 앞에서도 멈칫거린다. (중략)

나이를 먹을수록 하루도 짧고 일 년도 휙휙 지나가고 남아 있는 나날이 벌써 손에 잡히는 것 같다.

내일이 없는 사람마냥 여가가 생겨도 그저 하루하루의 즐거움을 먼저 이리저리 찾다가

오히려 아무 재미도 없이 흘려보내고 말 때가 많다. -84~85p

 

: "어제 뭐했지?"

어른이 되고, 더 정확히 말해서 직장인이 되고 난 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어제 뭐했지?" "아, 피곤해"이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건망증이 심해져서 일까.

 

하루에 60퍼센트 이상의 시간을 분명히 열심히 '일'을 하면서 보내는데, 아무것도 쌓이지 않고, 오히려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고, 지쳐있다. 그 지침을 달래보고자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목적 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유튜브로 짧은 예능 영상을 보고 킥킥거리다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반복되는 "어제 뭐했지?"

 

신랑과 내가 한창 데이트를 하던 대학생 시절, 나는 늘 무언가 읽고 있었다. 거의 매일 같이 카페에서 만났던 우리를 매일같이 쉬지 않고 그날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듣고 있는 노래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와 연관된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 했고, 그렇게 서로를 알아 갔다. 대하 소설을 읽는 그 때가 그립다는 작가의 말에 연애시절 우리가 그리워 진다. 

삭막해지기 전에 블로그를 시작해 다시 글을 읽고 정리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슬램덩크]에는 숱한 명장면과 명대사가 있지만 그때의 내게 가장 깊이 와닿은 장면은 조금 엉뚱하다. (중략)

"난 팀의 주역이 아니어도 좋다"였다. 난 이 대사가 이상할 만큼 뭉클했다.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이 대사와 겹쳐지는 말이 또 있다.

<무한도전> 초기 시리즈인 <무모한 도전>당시 유재석이 외쳐대던 "OOO씨는 에이스가, 아니었습니다!!"라는 멘트다. (중략)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특별한 존재이길 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무수히 자신이 얼마나 별 볼 일 없고 뻔한 존재인지 자각하게 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중략)

그럴 때 떠올린다. 그래, 나는 에이스가 아니었어. -112~113p

 

: '나는 에이스가 아니었어.'를 깨닫고, 그것을 체화할 때까지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성장하는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무겁고 힘든 교훈을 만화 슬램덩크에서도, 예능 무한도전에서도 찾을 수 있는 안목이 부러워진다.

1등만 주목받고,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을 가지고 부자가 되서 살아가는게 최고인 나라에서 '내가 에이스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불안감을 이겨내야 가능한 것이다.

이제는 알고 있다. 나는 에이스가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자유를 누리고 있어. 그거면 충분해.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누리는 타인의 존재를 편하게 받아들일 만큼 수양이 된 사람은 많지 않다. 꼭 누구를 착취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부를 만끽하는 모습만 꼴 보기 싫은 게 아니다. 정당하게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성취를 누리는 당연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의도적인 과시로 비쳐 증오를 낳을 수도 있다. 그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인간 세상은 원래 부조리하다.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127p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 인생은 모두 함께 하하호호하고 한번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Happily ever after"가 아니라는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느꼈다.

 

지방에서 19년의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큰 좌절, 결핍을 경험해본적 없던 나는 제2외국어는 물론 4개 국어에 능통한 특목고 출신 동기들 사이에서 주눅들었고, 옷을 사고 머리를 하는데 몇십만원 턱턱 쓰는 그들의 통 큰 씀씀이가 부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동기들이 듣는 수업을 피해 수강신청을 하고, 누구와도 곁을 내서 친해지지 않는 못난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고향친구들을 만나 지방보다 조금 빨리 유행하는 정보를 알려주고, 연예인 OO을 본 이야기 등 서울살이 얘기를 할 때 친구들의 눈에서 대학 동기들을 볼 때의 내 시선을 발견해 뜨끔했던 기억이 있다.

 

인생은 상대적인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입고, 먹고, 자는 세상이 어떤 문제를 낳는 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했고, 노력한만큼의 보상을 받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 낫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고, 부조리가 아니다. 그저 이 세상의 룰인 것이다.

 

규칙을 모르고 시작한 게임에서 지금 이 정도의 위치에 내 말이 놓인 것에 감사해야할까. 적어도 우리는 작가의 마지막 멘트는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에' 내가 이정도의 합리적인 태도를 유지할수 있음을.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야간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중략)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이야기하는 교수님을 보며 든 두 가지 생각.

'아, 아름답다.' 그리고 '아, 그런데 쓸데없다.'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인문학의 아름다움은 이 무용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258p

 

: 취업 할 때 그렇게 고생을 했지만, 나는 인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물론 인문학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에 억울하긴 했다.)

 

그래서 인문학에 대한 유명인들의 찬사가 마치 나의 4년에 보내는 찬사처럼 느껴져 다 모아두고 싶은 충동에 종종 사로잡힌다.(이 찬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만큼 4년간 죽도록 열심히 인문학을 공부하지는 않았다. 이것도 일종의 인문학 전공자의 자격지심이라고 해두자.)

 

인문학의 아름다움이 무용함에 있다는 작가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막상 나조차 취업 후 전공한 언어나, 문학작품에서 배운 교훈들을 업무에 적용해 본 적은 없었다.(업무에 적용했다면 미쳤니?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하지만 인문학으로 인해 내 삶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여백의 공간이 좀 더 생겼다는 생각은 종종한다. 누군가는 별을 보면 '별 이네'하지만 나는 쓸 데 없이 그 별 안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때로는 시베리아의 황량한 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 생각은 무용하지만, 아름답다. 나만이 가지는 보너스 공간인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가장 머리가 팽팽 돌아가던 시기에 인문학을 전공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얘기가 가득 담긴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을리가 없다. 그런면에서 나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쾌락독서]를 읽는 일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책을 사랑하게 된 계기, 잊고 있던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주렁주렁 딸려나올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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