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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_해외 문학

[해외문학/여성소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_소네치카 (줄거리, 작가소개, 감상, 비교문학)

by 삐와이 2020. 8. 1.

 

이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 작품 정보 >

 

- 제목 : 소네치카

- 작가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 줄거리 (교보문고 책소개 참고)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다준 표제작 《소네치카》는 여성과 가족에 대한 작가의 세계관이 잘 집약된 작품으로, 주인공 소네치카의 일대기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2012년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류드밀라 울리츠카야가 내한 시 찍은 사진. (출처 : 고려대학교)

 

- 작가소개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1943년생. 구소련 시대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자랐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생물학 전공 후 유전학 관련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불온서적'을 읽는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이후 그녀의 글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구소련의 붕괴 때부터이다. 우리나라에는 [소네치카]를 통해 유명해졌으며, 이 작품으로 '제 2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하며 유명해졌다. 그녀의 작품에는 푸슈킨, 투르게네프 등 러시아 대문호들의 향기가 묻어나고 탁월한 인간의 심리묘사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12년 수상을 위해 내한해 국내 언론과 인터뷰 하며 "어느 곳에서 살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은 항상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사랑, 고통, 이별, 죽음 등 그런 것들. 아이들이 부모의 뜻을 어기고 힘들게 할 때도 많고. 독자들이 내 책을 읽고 위안을 받고 해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라고 작품관을 밝혔다.


< 감상,서평, 비교문학 > 

 

※ 주로 작품의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읽으며 투르게네프나 푸슈킨 같은 러시아 대표 작가의 흔적을 찾아서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감상을 정리하였습니다. [소네치카]는 짧은 단편이니, 작품 내용을 온전히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책을 먼저 읽고 저의 감상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시대가 변해서일까. 요즘은 서점을 가도 여류작가의 소설들이 베스트셀러란에 많이 올라오고, SNS에서 화재를 일으키기도 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기도 한다. 그 덕분에 다시 생각난 여류작가가 바로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이다.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러시아 여작가로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왠지 모를 친근감이 더해진 작가이다. 러시아 문학 특유의 인간의 심리묘사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은 그녀의 작품에는 투르게네프, 푸슈킨의 흔적이 묻어난다.


  울리츠카야의 소설에서 ‘소네치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 속 소네치카의 모습에 따라서 ‘책 읽는 여자’→’현실 속을 살아가는 여자’(혹은 현실을 읽어나가는 여자)→’책 읽는 여자’의 구조를 띠는 독특한 형식의 원형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가지 재밌는 점은 이 작품 속에 수 많은 작품들이 모티브가 되어 등장하고 있고, 때로는 역자의 각주를 통해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지만 작품의 시작과 끝은 투르게네프가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의 전반부, 소네치카의 학창 시절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매 순간 도스토옙스키의 불안한 심연 속으로 내려가거나, 때로는 투르게네프의 그림자 드리운 가로수나,…위대한 러시아문학의 공간에서 자신의 영혼을 쉬도록 했다.’라는 문장을 통해 투르게네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작품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저녁이 되면 그녀는 배를 닮은 코에 가벼운 스위스제 안경을 걸치고 달콤한 심연, 어두운 가로수 길, 봄의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듯 뛰어든다.’라는 문장을 통해 다시 한 번 투르게네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일 수 있으나 이렇게 작품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투르게네프의 그림자는 소네치카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을 통해 연극처럼 다시 재현된다. 작품 속 소네치카를 제외하고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남편인 로베르트 빅토로비치, 딸 타냐, 그리고 고아인 야샤 3명이다. 이들 3명이 보여주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둔 핏줄간의 대립이라는 삼각구도는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에서도 표도르 바실리이치, 아들 블라디미르, 그리고 옆 집 소녀 지나이다를 주인공으로 하여 표현되었다.

   비록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아버지와 아들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딸과 아버지의 갈등으로 치환되긴 했지만 거대한 아버지라는 존재 앞에서 작아진 아들과 딸,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받는 여자가 모두 콧대 높고, 본인만의 매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적절히 이용하며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울리츠카야의 작품 속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그림자는 뿌쉬낀의 그림자이다. 소네치카는 작품의 시작부터 그녀의 그 어떤 특징보다도 ‘책 읽는 여자’의 특징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부각되어있다. 이 특징은 너무 강해서 그녀의 신체적 특징까지도 책을 읽는다는 행위적 특징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녀의 인상은 ‘책 읽는 여자’라는 한 구절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어쩐지 내게 ‘책 읽는 여자’라는 정의는 푸슈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 등장한 따찌아나를 떠올리게 만든다. 따찌아나나는 당시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달리 프랑스 낭만소설들을 읽으며 그녀 안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놓고 그 이상향에 걸 맞는 적절한 인물인 오네긴의 등장에 자연스럽게 그 사랑의 싹이 틔운다. 그녀의 사랑은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이었지만 그녀의 고백은 오네긴에 의해 단호하게 하지만 예의 바르게 거절당한다. 소네치카 역시 또래의 소녀들이 이르게 여인의 눈을 뜨는 것에 반해 눈을 꽉 감고 있다가 어떤 질서에 따르기라도 하듯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조용한, 하지만 탐욕스러운 사랑의 시선은 결국 또 하나의 오네긴을 그녀 앞에 끌어다 놓게 된다. 이로서 소네치카의 여성으로서의 전기는 완전히 끝이 나게 된다.


    이 후 그녀의 삶은 로베르트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에 맞이하게 되는데, 어느날 갑자기 로베르트가 등장하고, 어느날 갑자기 야샤가 그녀의 집으로 들이닥치는 것처럼 책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벗어난 현실의 세계에서 그녀의 삶은 그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바쁘게 페이지가 넘겨진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꿈 속에서 얼마든지 정의로운 여자 주인공으로, 따로는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그녀의 모습은 왠 일인지 현실의 세계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녀는 주변인물들과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삶을 살아간다. 예를 들어 타냐, 아샤, 로베르트가 서로의 관계를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것과 달리 소네치카는 타냐의 문란한 생활도, 아샤와 로베르트의 관계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또 소네치카의 작품 내 거의 유일한 독백(“하느님, 제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거죠.” “제게 왜 이런 행복을 주십니까.”)와 같은 구절들은 그녀가 남편의 삶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기 보다는 예술가로서의 남편의 삶에 감탄을 하는 관찰자의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그녀의 주인공이 아닌 채 살아가는 현실의 삶은 남편과 야샤의 관계를 본능적으로 직감한 뒤 변화한다. 남편과 가정에 헌신하는 삶을 살면서 다시 꺼내 들지 않았던 책을(그 책도 뿌쉬낀의 단편이었다.) 다시 꺼내 들게 되는 것이다. 소네치카의 말대로 그때부터 현실 속 그 무엇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고, 소네치카는 다시 책의 세계로 빠져든다.


   하지만 이후 소설의 전반에 걸쳐 단 한 번도 독자들에게 충격을 선사하지 않았던 그녀는 가장 조용하고 온화한 방법으로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린다. ‘바로 야샤가 남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고, 야샤를 또 한 명의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게 이런 소네치카의 선택은 그저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으로만 비춰지지는 않는다. 소네치카에게서 우리는 순종적인 여성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내면의 슬픔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는 남편과 딸의 친구의 부적절한 관계를 직감하고 난 직후의 극적인 장면에서 책으로부터 오는 조용한 행복에 온몸을 내 맡긴다. 이런 그녀의 평온함과 차원을 넘어선 포용은 어린 시절 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어 왔던 그녀의 모습에서, 삶 조차도 적극적으로 써내려 가기보다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읽어왔던 그녀의 ‘삶을 읽어나가는 여자’ 라는 특징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오네긴의 서재에서 오네긴을 잘 이해하게 되고 한 차원 높은 성장을 이뤄낸 따찌야나가 그랬듯, 인생 전체를 읽어가면서 보냈던 소네치카도 삶의 큰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 동안의 ‘읽음’에서 이룩한 성장을 바탕으로 한 차원 높은 결단력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마주하게 되는 소네치카는 더 이상 우리에게 작품 내내에 걸쳐 등장해 익숙한 소냐도 소네치카도 아닌 뚱뚱하고 수염이 난 노파 ‘소피아 이오시포브나’가 된다. 그녀가 걸쳤던 모든 현실세계의 옷들(남편, 딸들)을 벗어 던지고 난 뒤 되찾은 그녀 본연의 모습인 ‘소피아 이오시포브나’의 모습은 마치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난 뒤 성숙해 젊잖은 신사가 된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나 공작부인이 된 따찌야나의 모습처럼 낯설지만 어딘가 무시할 수 없는 성숙한 인간의 향기를 풍긴다.

 

   시대도, 삶의 모습도, 그 배경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너무 다르지만, [소네치카]안에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 같은 오늘날 소녀들의 모습도 보이고, 자신만의 삶의 태도로 인생의 위기를 맞아 결단을 내리는 단호한 모습도 보인다. '러시아', '구소련시대'라는 거리감 느껴지는 수식어를 걷어내고, '여성작가', '뛰어난 심리묘사의 작품', '고전의 무게감이 담긴 작품'이라는 수식어에 집중해서 본다면 이 작품은 가볍지만 무겁고, 짧지만 여운이 긴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여류작가 작품을 찾으시는 독자들에게 울리츠카야의 단편집 [소네치카]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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