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정보 >
- 제목 : 죄와벌
- 작가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줄거리 (위키백과 줄거리 소개 참조)
: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Raskolnikov)는 서구적인 합리주의자·무신론자이다.
가난에 허덕이고 고독에 짓눌린 그는 한결같이 추상적 사색에 몰두한다. 그의 예리한 지성은 이 고독의 사색에서 전인미답의 독창적 이론-초인사상-을 체계화시킨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인류는 '나폴레옹'과 '이(蝨)'로 분류된다. 즉 선악을 초월하고 나아가서 스스로가 바로 법률이나 다름없는 비범하고 강력한 소수인간과 인습적 도덕에 얽매이는 약하고 평범한 다수인간으로 분류한다.
그는 자신이 전자에 속하는 것으로 확신하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한 마리의 이에 불과한 무자비한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죽인다. 그리고 또한 그 장면을 목격한 여동생, 리자베타도 같이 죽이게 된다. 살인을 저지르고 난 라스콜니코프는 전에 가지고 있었던, 자신이 나폴레옹이 되어 다수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사상은 뒤로 미뤄둔 체 죄도 없는 리자베타를 죽인 양심에 대해서, 자신을 잡으려는 사회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러다 이를 죽여 나폴레옹이 되고자 했던 자신과는 달리 자신을 죽여 생계를 유지하는 매춘부 소냐를 본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그릇되었음을 깨닫고 소냐에게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하게 된다. 소냐는 네거리 광장으로 나가 자신이 더럽힌 땅에 키스를 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노파를 죽였다고 알리라고 하고 그에 라스콜니코프는 즉각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소냐는 작자가 이상으로 여긴 복음서적인 사랑과 인종의 사도이며 무신론자 라스콜니코프에 대립되는 구원의 담당자로 묘사되고 있다. 에필로그에서 그녀의 감화에 의한 주인공의 종교적 갱생과 정신적 부활이 그려지고 있다. 합리적 원리와 비합리적인 원리와의 해결하기 어려운 모순에 직면한 주인공의 심각한 고민은 투철한 심리분석과 극적인 박진력으로 훌륭히 묘사되고 있다.
- 작가 소개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1821년생. 자애로운 어머니와 가부장적이고 거친 아버지를 둔 도스토예프스키. 청년시절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잃고, 18살이 되던 해 영지의 농노들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는다. 고질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괴롭힌 간질 발작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1846년 첫작품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의 뒷골목에 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비극, 심리적 갈등을 그려내 '제2의 고골'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러시아문단에 데뷔하였고, 이후 작품들에서도 농노제가 무너지고 근대사회로 접어드는 러시아의 과도기적 시대상, 격변의 시대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들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써서 러시아문학의 대표 문호로 자리잡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며 작가는 마지막 장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쓰다가 폐동맥 파열로 인해 60세의 나이에 작고한다. 이 작품을 집필할 때 이미 도스토예프스키의 건강은 상당히 좋지 않아 그의 구술을 받아써서 작품이 발간되었다고 하며, 현재 발간된 부분 뒤에도 소설이 구상되어 있었는데 죽음으로 완결되지 못했다고 한다.
< 읽고, 느끼고 쓰기 - 산책자로서 라스콜리니코프 >
※ 작품의 직접적인 줄거리, 묘사를 넣지는 않았지만 작품을 읽고 느낀점을 자유롭게 정리하다보니 스포일러가 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작품을 온전히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가까운 서점에서 책을 읽은 뒤 저의 감상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길다면 긴(몇 주 만에 죄와 벌을 정독하는 것조차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면 동의할 것이다), 짧다면 짧은(사실 작중에서 주인공이 겪는 시간은 매우 느리게 흘러간다.) [죄와 벌]을 읽고 난 뒤 처음으로 든 생각은 ‘한동안 어딘가를 쏘다녀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었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끝도 없이 중얼댄 탓에 내 머릿속까지 복잡해진 탓인지, 혹은 라스콜리니코프를 이해하려면 나도 어딘가를 적어도 신촌의 밤거리 정도는 걸어줘야 할 것 같아서인지는 모르지만 ‘산책자’로서의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미지는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제목부터가 매우 정직하게 밝히고 있듯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시공간은 지나치게 암울하다. 분명 당시의 빼쩨르부르그는 근대화의 영향을 받아 어느 정도 화려함도 자랑하고, 긍정적으로 보일 법한 공간들, 인물들도 보일 법한데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아가는(후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살아간다’는 표현이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라스콜리니코프의 경우 ‘거쳐간다’ 정도가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빼쩨르부르그는 근대화로 인한 축복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르멜라도프와 같이 주요인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술집이나 매춘부들이 득실대는 공간, 대낮에 길거리에서 능욕을 당할 위기에 처한 술 취한 어린 소녀와 같이 스쳐지나가는 작은 인물들조차 부정적이고 무언가 벌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의 빼쩨르부르그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 [죄와 벌]이 종교적, 심리적, 문학적, 도덕적 등등 다양한 시각에서 읽힐 수 있을만큼 복잡하고 한 장면에서도 수많은 인물들의 목소리가 난무하는 소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새로운 세계로 자리 잡지 못한 빼쩨르부르그의 공간적 배경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라스콜리니코프는 학업을 위해 상경한 가난한 대학생으로 등장하는데 소설 속 주변 인물들의 말이나 그 자신의 회상을 쫓아가다보면 그가 한 때는 출세를 꿈꾸고 빼쩨르부르그라는 도시의 주인으로 자리잡기를 희망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의 재능과 명석함을 인식하고 있고 그 능력을 새로운 세상을 위해 쓸 준비가 된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살 준비가 된 라스콜리니코프에 비해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지 못했던 빼쩨르부르그는 라스콜리니코프는 그저 ‘산책자’로 머물게 만들었다.
그 결과 그는 그 어디에서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난무하지만 무엇이 그의 목소리인지 그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 처한다. 결국 그는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내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 시도가 발현된 것이 바로 ‘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살인’이라는 행위는 후에 그가 스스로를 ‘넘어서는’ 존재는 될 수 있을지라도 ‘넘어선’ 존재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시인함으로서 창조적 행위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에필로그에서 감히 추측컨대 라스콜리니코프는 여전히 산책을 멈추지 않을 운명일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는 부활했고, 새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으나 마지막까지 성서를 펼치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등장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라스콜리니코프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공을 넘기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고전문학은 무겁지만 삶의 무게를 바로잡는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 많다. 필독도서 목록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 [죄와 벌]을 드디어 정복해보겠다는분, 선과 악은 무엇인가. 무엇이 바른 선택인가. 삶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시는 분들은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그 해답을 찾아보시기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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