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고, 쓰기_국내 영화

[드라마영화/체육영화] 4등_줄거리, 결말(스포), 감상평

by 삐와이 2020. 8. 4.

 

이미지 출처 : Daum영화

 

< 영화 정보 >

 

- 감독 : 정지우

- 배우 : 박해준, 이항나, 유재상, 최무성, 정가람 등

- 개봉 : 2016.04.13

- 116분, 15세 관람가


<영화 내용, 결말 그리고 감상>

 

※ 영화의 주요 부분, 결말에 대한 부분이 적혀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지양하시는 분들은 뒤로가기 해주세요.

 

   故최숙현 선수의 억울한 죽음이 채 밝혀지기도 전에, 한국 체육계에는 또 하나의 비보가 터졌다. 이번에는 프로 배구선수 고유민 선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고유민 선수의 어머니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이가 '힘들다. 그만두고싶다'는 얘길 자주했다. 그때마다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다독이기만 했다. 딸을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너무 후회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비단 이 문제가 어찌 체육계만의 문제겠느냐만은 이 두 젊은 선수의 죽음은 내게 영화 [4등]을 생각나게 했다.


 

선수촌을 무단이탈한 광수에게 회초리를 드는 감독. 광수에게 100대만 맞자고 무자비하게 폭력을 가한다.

 

   영화는 흑백화면 아시안게임을 앞 둔 태릉선수촌 수영선수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 유난히 여유가 넘치고 돋보이는 선수 광수는 아시안신기록을 갱신한 재능 있는 수영선수이다. 재능이 뛰어난 나머지 선수촌 내에서도 그는 코치, 감독, 선배들이 쉽게 건드리지 않는다. 그 또한 훈련 전날에도 폭음을 하는 등 본인의 재능에 자신감을 보인다. 자만이 과해져서 였을까. 광수는 고향 방문을 핑계로 고향에서 도박을 하며 선수촌에서 약 일주일간 무단이탈을 하고 그가 돌아오자 감독은 불성실한 광수에게 폭력을 가하고, 광수는 100대 맞으라는 감독에게 항의하며 국가대표단을 뛰쳐나온다

 

   국가대표단에서 쫓겨난 광수는 선수촌에서 만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폭력을 당했다고 기사를 써줄 것을 부탁하지만, '맞을 짓을 해서 맞았네'라는 답변을 들을 뿐이다. (이 시점 화면에서는 기자의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광수의 멍한 표정으로 기사가 거절됐구나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물살을 가로지르는 어린 선수들의 수영모습을 영화는 느리고 우아하게 촬영한다. 그 우아함은 물 밖에서 "준호야!!!!!"를 목놓아 외치는 엄마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면은 이제 컬러로 바뀌고, 현재 시점에서도 수영장에서는 어린 선수들의 경기가 한창이다. 엄마는 '준호야!!!'를 외치며 안타까운 마음에 소리를 질러대지만 준호의 성적은 늘 4등. 엄마는 4등을 해도 여유만만, 틈만나면 그 나이 또래처럼 친구들과 장난치고 컴퓨터게임을 하고싶어하는 준호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 엄마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부도 떨고, 돈도 써가며 찾은 코치는 바로 국가대표단에서 무단 탈퇴한 후 16년이 지난 성인이 된 광수다. 메달만 따게해달라는 엄마를 코치는 절대 수영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광수는 준호를 맡기로 한다.

 

너 잘되라고 때리는거야. 지금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광수를 변하게 한건, 누구였을까.

 

   준호를 맡기로했지만 광수는 수영장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준호에게 PC방에서 적당히 시간만 떼우다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런 광수에게 준호는 진심으로 메달을 따고 싶다고 소리를 친다. 내가 수영하는 걸 보기라도 하라고.

그렇게 준호는 광수에게 제대로 코칭을 받게되는데, 광수는 강압적인 교수법을 고수한다.

"집중하라고 했지!", "맞을만하니까 맞는거야!", "왜 시키는대로 안해!" "몇 대 맞을래?" 

16년 전 폭력의 피해자로 선수단을 뛰쳐나갔던 광수의 입에서는 16년 전 감독의 멘트가 그대로 흘러나온다.


 

준호의 메달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준호의 엄마. 엄마에게 코치를 소개해주는 분이 준호에게 상처가 될까봐 무섭다고 발언하자 "나 그 상처..메달로 가릴거에요"라고 말하던 준호의 엄마는 모습은 우리네 부모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더 무섭다.

 

   광수와 수영을 시작한 이래로 준호는 웃음을 잃고 기계처럼 수영만 하게 되는데, 그런 준호의 몸에 피멍이 들고있다는 것을 엄마는 알게 되었지만, 애써 모른척한다. 그리고 전국소년체전에서 마침내 준호는 메달을 목에 걸고 '거의 1등'을 할뻔한 '2등'이 된다. 준호의 메달을 축하하는 가족파티에서 준호의 동생은 준호에게 "정말 맞아서 잘하게 된거야?"라고 해맑게 묻고, 준호가 맞으며 수영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아빠는 준호의 코치를 찾아간다.

 

   광수와 마주한 준호의 아빠는 바로 16년 전 광수가 국가대표단에서 벌어진 폭력을 신고했던 기자 영훈.

영훈은 광수에게 다시는 준호에게 매를 들지 않을 것을 약속 받고, 폭력이 가해질 경우 기사를 써서 수영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돈을 건낸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레슨에서 광수는 다시 준호에게 매를 들려고하고, 맞고 싶지 않다는 준호에게 준호의 아빠가 얼마나 이중인격인 사람인지 아냐며 소리를 지른다. 준호는 그 길로 수영복만 입은 채 수영장을 뛰쳐나오고 아빠가 있는 신문사로 향한다. 그리고 만난 아빠에게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아빠, 나 수영 그만할래. 수영장에서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소년 준호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16년전 광수가 도움을 요청했던 기자에게 16년 후 이제는 아들이 된 폭력의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수영을 그만두겠다는 준호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엄마는 "우리 같이 열심히 해왔잖아!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내가 어떻게 했는데!!!" 소리를 치고, 그날로 준호가 아닌 동생 기호의 공부에 올인하며 준호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수영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소년 준호는 수영에 대한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밤 중에 몰래 수영장에 들어가 도둑 수영을 하고, 다시 광수코치를 찾아간다. 그동안은 진짜 1등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진짜 1등이 되고싶다고. 수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1등이 되어야만 한다는 그에게 광수는 '니 혼자 수영하면 잘 될끼다.'라는 멘트와 16년 전 아시안신기록을 달성할 때 낀 본인의 수경을 건네준다. (물론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만은 아니다. 광수는 기자 영훈에게 전화해 16년 전 본인의 도움을 거절했던 그의 비겁함과, 맞아야 잘한다. 아들이 금메달따면 감사하게 될거다.며 소리를 치기도 한다.) 

 

준호는 수영장에서 무엇을 보는걸까. 연습중에도 수영장 바닥에 비친 불빛을 따라가기도 하는 순수한 준호는 이제 수영을 하고싶어서 메달에 목을 매게 된다.

 

 

   그렇게 혼자 수영을 하게 된 준호. 영화는 준호의 마지막 경기를 준호의 시점샷으로 보여준다. (준호가 수경을 쓰면 관객이 수경을 쓰기라도 한 것 마냥 화면이 검게 흐릿해지고, 긴장한 준호의 숨소리도 가까이서 들린다.) 그리고 물 속에 들어간 준호는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닌 싱크로나이즈를 하는 것 마냥 물살을 가르고, 잠영하며 수영장에서 아름답게 수영을 한다. 그리고 화면은 결승선을 찍는 준호의 원거리 샷, 1등이라고 찍힌 전광판을 비추고,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준호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동안 준호의 경기에서 요란히 울리던 엄마의 고함소리, 관중들의 함성소리 등은 이 시점에서 사라져 있고, 화면은 오로지 준호의 시선 향하는 곳, 준호가 듣는 소리만이 들린다.)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아주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무거운 영화이다. 마치 정장을 갖춰 입고 수영장 물 속에 몸을 담그고 나오기라도 한 것 마냥 진이 빠지기도 하고, 준호의 경기장면이 나올 때마다 준호의 엄마처럼 준호를 응원하기도 하고, 또 수영장 바닥의 아름다운 빛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준호의 모습을 보며 알수없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기야 나 솔직히 준호 맞는거보다 4등 하는게 더 무서워." 고백하는 준호의 엄마는 학교 끝나면 학원, 학원 끝나면 숙제, 좋은 대학, 좋은 직장, 1등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 그 자체로 우리는 곧 준호이자 준호의 엄마였기에 준호의 엄마와 거리감을 두고싶어도 둘 수 없는 데서 오는 죄책감을 느낀다. 

 

   맞기 싫어서 수영을 그만 둔 광수는 이제는 "그 때 내가 수영을 잘한다고 안 때려준 코치를 원망한다"며 실력있는 아이가 더 잘되게 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되물림은 준호에게도 이어진다. 기호가 준호의 수영복, 수경을 몰래쓰고 욕조에 들어가자 준호는 광수에게 맞았듯 기호에게 폭력을 가한다. "몇 대 맞을래?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아야지"하는 준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광수의 보이지 않은 16년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그래도 '가혹하지 않은 선에서의 체벌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내 마음에도 생채기가 나는 것 같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에 마음 속에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그려보았다. 내가 준호 엄마였다면, "그래 준호야 재밌게 운동해. 쉬고 싶으면 게임도 하고. 친구랑 장난도 치고. 행복하게만 살아줘." 할 수 있었을까. 당장에 나의 삶에도 쿨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회사에서 고과를 더 잘 받았으면 하고, 우리 집이 옆집 보다는 더 부유했으면 하는데 자식에겐들 행복만 좇으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하는 멘트는 이미 식상해졌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남보다 더 나은 위치에 서지 못해서,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거나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거나, 폭력을 정당화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뉴스에 넘쳐난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고, 1등을 좇는 문화는 다시 수많은 4등, 4등 엄마를 낳을 뿐이다. '너 혼자하면 잘 될거라고'마지막으로 준호에게 충고하는 광수의 모습은 결국 16년전 위기에 처했던 광수가 듣고 싶었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감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해답이기도 했다.

 

   사회가 한순간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어느날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4등 했어'라고 해맑게 뛰어온다면 '잘했네~'하고 진심으로 웃어줄 수 있는 그런 4등 엄마가 되어보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지금 이대로 살아도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폭력의 순간이 영화에 많이 나와 보는 와중에 쉼호흡을 크게 몇번 들이셔야 하지만, 아름답고 덤덤하게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여주는 영화를 찾는다면, 체육영화, 성장영화, 좋은 드라마 영화를 찾는다면 영화 [4등]을 강력 추천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