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고, 쓰기_해외 영화

[영화 감상]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감상후기, 결말&해석, 관련 이야기

by 삐와이 2020. 7. 18.

 

 

< 영화 정보 >

 

- 제목 : 마담프루스트의 비밀정원(Attila Marcel, 2013)

- 감독 : 실뱅 쇼메

- 주연 : 귀욤 고익스, 앤 르 니

- 106분, 전체 관람가


<영화 감상> 

 

※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내용도 아주 살짝 들어가 있습니다.

※ 감상 중간에 결말이나 주요스토리를 연상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을 수 있으니 스포일러를 지양하시는 분들은 영화감상 부분을 뛰어넘고, 마지막 배경지식 부분만 읽어주세요.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근간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우연히 들고다니며 읽었던 책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읽은 이 영화와 책은

당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은 

경험이라기 보다는 기억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_


같은 경험도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다른 형태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는 한 시절의 기억에 갇혀 같은 하루만 반복적으로 살아가기도 하고,
아빠라는 존재도 목소리도 잃고, 목소리도 잃은 채 의미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올리버 색스의 책에서는 인지장애, 부분 기억상실, 자폐 등 다양한 신경의학적 장애의 사례들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중 내 기억에 오래 남는 치료 사례들은 '기억에 의해 상처 입은 자들'이다.

그들은  표류하는 기억 속에서 허락된 소소한 행복만 누린다.
(아...그것을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들의 끝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다행히 영화 속 마르셀은 기억의 늪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아빠'라는 존재를 바로 세우고
목소리와 꿈, 행복을 찾는다.
_

이 영화에서 주인공 폴(귀염 고익스)은 어린 시절 큰 충격을 남긴 사건으로 인해 말을 잃고, 감정도 잃고두 이모들의 돌봄을 받으며, 이모의 댄스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치며 반복된 살아가는 다소 얼빠진 청년으로 등장한다.
관객들은 폴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가 기괴하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며 그저 폴을 상처 입은 인물로 인식한다.

그런 폴의 삶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계기는 아랫층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앤 르 니)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우연히 이모들의 손님으로 집에 찾아오는 코엘로 아저씨(루이스 레고)를 좇아 그녀의 집을 찾게된 그는 그녀가 주는 차와 마들렌을 마시고 과거의 노래를 들으며, 일종의 최면치료를 받게 된다.

치료 과정에서 그는 때로는 젊은 시절 엄마를 보게되어, 미소를 짓고 그의 상처·아픔(아버지의 폭력성)과 정면으로 대면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치료의 끝에서 그가 알게 되는 사실은 그의 경험 속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지극히 사랑했으며, 그 역시 그 안에서 행복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의 부모는 프로레슬링 선수였고, 그가 아버지에 대한 왜곡된 기억을 가지게 된 것은 부모의 레슬링 연습 장면을 본 기억만이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_

그리고 이 부분을 확인하는 순간 관객들은 다소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아...그의 아버지가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마르셀의 상처가 치유되겠구나.'라는 안도감과

'아니, 사랑이라는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누군가의 가슴에 폭력으로 뒤바껴 기억될 수 있다니 기억의 힘이 얼마나 무서워'라는 불안감으로.

_

왜곡된 부모의 상을 바로 잡으며 마르셀은 자신감을 되찾게 되고 그간 단 한번도 수상을 하지 못했던 피아노 콩쿨에서도 우승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승한 날 밤 마담이 남긴 마지막 치료약을 먹고 피아노가 그의 부모를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그는 과감히 피아노를 그만 둔다.

(대신 마담이 집에서 불법으로 각종 작물들을 키웠듯 피아노에서 식물을 키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영화의 아기자기한 미술적 색채감은 마치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_

이 부분까지만 보면 폴은 결국 왜곡된 기억 속에서 33년의 허송세월하고, 

기억을 바로잡은 뒤에도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 영화는 마담의 죽음 뒤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폴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희망적인 결말을 선사한다.

마담의 죽음 이후 폴은 그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표한 미셸(케아 카잉)과 결혼하고 사람들에게 우쿨렐레를 가르치며 웃음도, 말도 찾은 삶을 살아간다.
무엇보다 이제 그는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다음을 꿈꾸는 삶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누구나 살아가다보면 세상에게, 타인에게 상처를 받고 그 상처는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만들어 현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삶의 어느 시점에는 가장 좋았던 기억까지도 희미해지고, 왜곡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 영화는 마담 프루스트가 너무 틀에 박힌 역할을 하고 있고, 폴의 성장을 위해 만들어낸 캐릭터 같다는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폴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통해 오늘날 우리들에게 '기억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사례' 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영화는 나와 신랑이 아주 오랫동안 내 집처럼 누비며 곳곳을 추억으로 쌓아두었던 공간에서 오랜만에 다시 본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왠지 모르게 영화관 근처의 카페들, 영화관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들까지 찬찬히 눈에 담아보게 되었다. 추억이 있어 아름다운 공간이라 생각했는데, 찬찬히 보니 그냥 그 자체로도 생동감있고, 아름답다.

이렇게 오늘을, 내일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날이었다.

 


<영화 배경지식>

 

-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어떤때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영화는 유명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명언으로 시작되고, 이 영화는 대놓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노라 영화 곳곳에서 고백한다.

(주인공인 마담의 성도 프루스트이고, 폴의 아빠도 기억 속에서 'ATTILA MARCEL'이라는 옷을 입고 등장한다.)

 

- 국내에서 이 작품은 2014년 전주국제영화제, 상상마당 음악영화제, 2015년 제주프랑스영화제, 2016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초청되며 다소 긴 시간동안 관객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다양성영화로 분류되어 국내 관객수는 16만명에 그쳤지만 관객들에게는 좋은 평을 얻었던 작품이다.

 

- 프랑스 영화는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아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익숙치 않지만, 작품에서 마담 프루스트로 등장한 '앤 르 니(Anne Le Ny)'는 프랑스 내에서는 많은 작품에 감독, 배우로 출연하며 인지도가 높은 배우이다.

 

- 이 작품의 연출은 다소 동화적인 면이 있는데 작품의 감독을 맡은 '실뱅 쇼메'는 [일루셔니스트]를 통해 잘 알려진 프랑스의 애니메이션 감독이며, 이 작품은 감독의 첫 실사 영화로 감독만의 장점을 담아 동화같이 아름답게 연출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여기저기서 읽고 들은 내용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포스팅에서 틀린 부분이 있거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댓글을 달아주시면 기쁜 마음으로 수정하겠습니다 :)

 

반응형